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음식점 주방일을 맡아 하는 남편이나 입맛이 까탈스럽지 않은 남편을 둔 아내는 음식솜씨가 늘지 않는다. 그래도 타고난 손 맛이 있거나 눈썰미가 있으면 이따금 흉내를 내며 부엌 살림을 그럭저럭 꾸려간다.  
어느 날, 개그맨 자식을 둔 어머니가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김밥이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김밥을 말아주는 역할을 하려는데 난감하기만 하다. 그 집 남편이 주방장 출신이라 현업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그 집의 주방장이 됐다. 식재료만 있으면  요리를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 낸다. 
그래도 장가 간 아들이 어머니에게 김밥이 먹고 싶다는 바람에 판을 벌였으나 평소 실력이 드러나는 바람에 낭패를 보고 말았다. 솜씨는 길들지 않았다고 치자, 사둔 재료도 잊어버리고 빼먹었으니 울상이 되고 말았다. 
노령기에 접어든 그녀는 요즈음 운동 삼아 스포츠 댄스를 하러 다니는데 남편의 음식 솜씨를 믿고 집밥 한 끼를 운동하는 동료들에게 대접하기로 했다. 메뉴는 전어무침, 주꾸미 볶음, 조기찜이다. 밑반찬과 밥을 먼저 차려놓고 쪄놓은 조기찜을 내고, 이어 주꾸미 볶음을 금방 볶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전어를 무쳤는데 아들이 한 입만 먹어보자고 접시를 내민다. 전어무침을 입에 넣는 순간 ‘우웩’ 한다.  
“아빠, 지독히 짜.” 평생 간을 보지 않고 음식을 해도 실수하지 않는 ‘계량 손’인데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개그맨의 아버지도 한 점 입에 넣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손님을 불러다 놓고 그럴 수가 없으니 울화통이 치민다. 
즉시 설탕이라 써진 통을 열고 먹어본다. 짜다. 얼굴이 벌개져서 부엌을 이리저리 돌다가 슬그머니 식탁으로 간다. 입었던 앞치마를 벗었다 입었다 해도 성이 가시지 않는다. 슬그머니 여성들 사이로 들어가 주꾸미 볶음을 한 입 먹어봤다. 오만상을 찌푸린다. 그의 아내는 속도 없이 웃고 있는데  그녀 남편의 얼굴에는 단풍이 든다. 곧이어 상황파악에 들어간다.  
“여보 내가 뭐 잘못한 것 있어요.” “있지.”그리하여 주꾸미가 식탁에서 철수됐다. 전어무침은 양념을 씻어서 간을 빼고 다시 양념을 해 마무리했으나 주꾸미는 이미 간이 배어 식탁에 오르지 못했다. 지독히 짠 음식을 먹은 손님들이 대놓고 짜다고 아우성 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인연인가. 그러한 심정을 나중에야 알아차리고 초대한 사람은 미안해 절절 맨다. 
흰색이라고 다 설탕이 아니다. 그릇에 설탕이라고 써 있다고 설탕이 담기는 것도 아니다. 어디 설탕 그릇에서만 그런 실수가 일어나겠는가. 살아가는 순간마다 확인하고 사용해야 하지만 커피 집에서 시럽을 넣는다고 그릇이 비슷한 세제를 타서 마신 남성도 있다. 
특히 전쟁통에나 선거철에는 가짜 정보가 판을 치고 위장전술이 도를 넘으니 만사에 확인은 기본이다. 저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란 영화에서도 상대 진영의 군복으로 갈아입고 적지에 침투해 다리에 폭탄을 장전해 승리로 이끌지 않았는가. 
이에 부응해 군사 정권 초기에 모든 문서 위에 ‘확인합시다’라고  적도록 했다. 각도가 조금만 달라도 포탄이 떨어질 자리를 비켜가고 적군이 들어오는 시간만 잘못 알아도 전술이 노출되는 긴박한 입장에서는 그러하겠지만, 일상에서는 그 구호가 그냥 글자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만사에 확인하라고 외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와 마주 앉았다가 총탄에 넘어간 비운의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당신이 흰색이라고 믿는 지인은 설탕인가 소금인가. 확인하지 않고 인생을 버무려도 금방 버무린 인연은 양념을 털어내듯 덧입힌 맛을 털어내면 관계의 회복이 가능하나, 간이 프라이팬에서 배어 버린 주꾸미는원 메뉴로의 회복이 불가능해 탕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확인하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음식이 되듯 원하지 않는 인생이 될 확률이 높다.”
그날 달콤한 웃음이나 칭찬을 기대했던 그녀는 소금 뿌려진 표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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