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뉴밀레니엄. 온 세상이 새로운 천년을 환호하던 2000년 무렵, 대한민국에 획기적인 ‘골든크로스’가 일어났다.
아파트의 대약진. 아파트 수가 단독주택을 능가하고, 아파트 거주자가 단독주택 거주자를 역전했다. 이때부터 아파트 주거생활이 압도적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야말로 ‘불가역’이 됐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온 동네 사람이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아파트가 느는 만큼 직원 수도 급격하게 늘었다. 관리사무소장부터 중간관리자와 기사, 경리에 경비원과 미화원까지, 모두 합하면 3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우와 노동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열악하기만 하다. 자식, 손주뻘 되는 입주민에게 얻어맞은 경비원에, 엉뚱한 이유로 소장을 폭행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종놈’ 호칭은 예사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의미 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윤관석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주택관리연구원이 주관한 ‘아파트 종사 근로자의 고용환경 개선’ 세미나다.
이날 제1발제자로 나선 강은택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사무소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부당간섭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비원의 부당지시 경험은 70%가 넘는다. 이는 공동주택관리법에 ‘부당간섭 및 부당지시 금지’ 조항이 삽입되기 전이나 후의 상황이 마찬가지임을 보여준다. 선언적 의미의 ‘금지’만으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 눈여겨 볼 점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비롯한 주민대표의 부당간섭에 더해 일반 입주민들의 모방행위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주민대표의 몰지각한 갑질을 똑같이 따라하는 입주민이 는다는 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직원들에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런 걸 ‘점입가경’이라고 해야 할까….
더욱 심각한 건 지자체에 실태조사를 의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간 경우가 90%를 넘는다는 점이다. 해고 등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잘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이의제기조차 하지 못한단 뜻이다.
제2발제자로 나선 한영화 변호사는 “관리종사자들이 당하는 인격 침해를 목격하고 안타까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사용자배상책임 등 법적 구속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외양간을 먼저 고쳐야 소를 잃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모두가 방조자”라 했고, 서울노동권익센터 이철 정책연구팀장은 “입대의의 아파트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혁순 변호사는 “모범관리단지 선정을 위한 세부평가 항목에 ‘노동환경개선’을 추가해야 한다”고 하고,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한용훈 중부권회원권익위원장은 “일부 입대의 임원들의 전횡이 입주민들에게 잘못된 학습효과로 이어지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지적이다.
서울시 정종대 주택정책개발센터장은 “수박 겉핥기나 다름없었던 여타의 세미나에 비해 오늘은 매우 심도 있고 내용도 풍부했다”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상생과 포용의 문화가 공동주택 전반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힘줘 말했다.
해를 더할수록 연구의 폭과 성과가 넓고 깊어지는 한국주택관리연구원. 공동주택 관리현장을 들여다보는 그 진지한 열정이 빛을 발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노동자가 괴로운 일터에서 주인의 요행이 오래갈 리 없다. 공동주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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