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처에 분노와 비이성의 물결이 넘실댄다.
‘갑남을녀’에서의 ‘갑’과 ‘을’은 그저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는데, 정체도 불분명한 이상한 단어 ‘갑질’이 악마적 일반명사로 자리 잡았다.
힘 센 자, 돈 많은 자들만 행사하는 줄 알았던 ‘갑질’은 이제 약자끼리 더 애용하는 행위가 돼 버렸다. 조금만 더 힘이 세도, 아주 조금 더 높은 위치에만 있어도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을 멸시하며 위세 부린다. 때론 살인을 부르기도 한다. 먹을 것을 놓고 생존을 다투는 원시시대도 아닌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여전하다. 계급 간이 아닌 약자 간의 혐오가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경비면 경비답게 짖어야지 개xx야, 아무 때나 짖느냐? 주인한테도 짖느냐, 개가?” 방송뉴스 전파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진 한 입주민의 육성은 시청자의 가슴에 가장 지독한 수준의 초미세먼지를 퍼부었다. 차량등록도 하지 않은 그는 차단기를 늦게 올렸단 이유로 경비원을 개 취급하고 폭력까지 행사했다.
며칠 전 183㎝의 건장한 20대 청년이 132㎝, 31㎏ 초등학생 몸집의 어머니뻘 되는 여인을,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이 30여 분간 끌고 다니면서 때렸다. 폐지를 주워 살아가던 58세 여성은 장례 치러줄 가족도 없는 홀몸이었다. 심한 구타에 여인의 얼굴은 형체조차 없었고, 청년의 신발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더욱 기가 찬 건 범인을 제압해 경찰에 넘긴 시민이 오히려 범인을 너무 때렸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지도 모르는 상태란 것이다. 훈장을 줘도 모자랄 판에….
지난 1일엔 층간소음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폭행한 입주민이 붙잡혔다. 72세 경비원은 뇌사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추석연휴엔 폭행을 피해 달아나던 70대 경비원을 따라가며 연속 폭행한 20대가 검거됐다. 경비원은 치아가 부러지고 머리 충격으로 치매가 올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전체 경비원 수는 25만여 명. 99%가 남성이고, 특히 아파트 경비원은 대부분 할아버지다. 가족 등을 합하면 적어도 100만명 이상이 경비원과 직간접적 인연을 맺고 있다. 남편과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일터에서 ‘개’ 취급 당하고, 아들, 손자뻘 되는 사람에게 욕먹고 얻어맞으며, 죽기까지 한다는 뉴스를 접할 때, 가족의 심정이 어떨까.
약자가 서로를 보듬어주기는커녕 정반대로 혐오하며 미워한다. 자신이 ‘개·돼지’라 불리는 것도 모르면서, 자기보다 약해 보이면 ‘개’ 취급하는 블랙코미디가 횡행한다. 개들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늘고 있다. 개인의 악행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우리 사회의 칸막이가 점점 더 두터워지고 있다. 모든 이들이 강남에 살고 싶어 하지만 강남사람들은 결코 자리를 양보하거나 다른 이들의 진입을 허용할 의사가 없다. 입성한 이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견고한 무한세습의 성을 구축한다.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의 선진국 진입을 교묘하고 은밀하게 방해하고 차단한다고 논증하는데, 이런 ‘사다리 걷어차기’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낮은 계급 출신의 능력만으론-‘강남’으로 상징되는-부유하고 출세한 사람의 반열에 들 수 없다는 좌절과 분노가 엉뚱하게 아래로 표출되고 있다.
이국종 교수는 “응급외상센터에 실려 오는 환자 대부분은 블루컬러 노동자들”이라며 “날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실상을 전한다. 그래서 시설 개선도 요원하다.
강자의 횡포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면서, 약자끼리 서로를 개 취급하며 물어뜯는 세상에서 미소 짓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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