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이 어느새 화려한 가을로 바뀐 것도 잠시, 단풍마저 떨어지고 나면 순식간에 지나간 가을이 아쉬워진다. 멀어지는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은 마음을 달래줄 억새 명소를 추천한다. 단풍보다 더 가을감성 짙어지는 억새 군락지로 떠나보자.

▲ 황매산

노란빛의 합천 황매산

봄에는 철쭉으로 덮이는 합천 황매산이 가을에는 억새의 부드러운 빛으로 뒤덮인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에 위치한 황매산을 수놓은 갈색빛의 억새 물결이 늦가을의 감성에 취하게 한다.
주차장에서 황매산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오토캠핑장도 있다. 황매산에 오르고 이곳에서 캠핑을 하는 것도 운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캠핑장을 지나 어느 정도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계단이 이어지는데 난간 옆으로도 억새들이 자라나 있고 사이사이 시들어가는 가을꽃들도 볼 수 있다. 올라가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면 멋진 풍경이 발 아래 펼쳐지는데 그 풍경을 보면서 올라가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산자락과 저 아래 노랗게 물든 가을 논밭의 아름다운 색채까지 보인다. 황매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부분에 경사로 마무리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라산 정상 같다. 게다가 운무에 싸여 희미하면서도 위용 있는 모습이 드러나는 정상부의 모습이 독특하면서도 멋있다. 산의 모양 때문에 등산할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건 황매산이 처음이다. 
정자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산자락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억새 너머로 겹겹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부드러운 산자락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갈색빛으로 빛나는 억새들은 역광으로 돌아서면 은빛으로 일렁인다. 어느 색감이든 쌀쌀한 가을 날씨와는 달리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색감이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아쉬운 마음을 위로받는 기분이다. 황매산 주변에는 둘레길도 있어 등산을 마치고 주차장까지 가는 기적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숲길로 내려가 봤다. 막바지 단풍으로 물든 숲을 지나며 내년 가을을 다시 기약해본다.

 

▲ 무장산

진한 갈색빛의 경주 무장산

경주에는 가을 단풍명소들이 많다. 때문에 가 볼 만한 곳도 많지만 경주에서 억새를 제대로 보려면 무장산 정상의 억새 군락지만큼은 꼭 가봐야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에 위치한 무장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갈 수 있는데, 18번 암곡행 버스를 타면 된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역, 보문단지를 지나는 버스로 배차 간격이 넓긴 하지만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그저 고맙기만 하다. 버스를 타고 마지막 종점역인 왕산마을에서 하차하면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면 왕복 4시간이 소요된다. 국립공원이라고 적힌 입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갔다. 얼마 정도 걷다 보면 계곡길과 능선길로 코스가 나뉘는데 단조로운 숲길이 이어지는 능선길보다는 계곡길을 추천한다. 아래에서부터 열심히 쉬지 않고 1시간 반 정도를 걸었더니 마지막 화장실을 지나자마자 급격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하나, 둘 억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숲이 사라지고 평지가 등장한 것이다. 예전에 무장산 정상에서 젖소를 키우던 오리온 목장이 문을 닫으면서 텅 비었던 초지가 억새 군락지로 변하게 된 것이라 그 면적이 아주 넓다. 
숲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탁 트인 정상부에 오르니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억새 군락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보슬보슬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억새!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풍경이다. 똑같은 가을 풍경인데 오색찬란한 단풍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가을 정취를 느끼기엔 역시 억새만 한 게 없다. 무장봉 가장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를 향해 가는 길의 가파른 언덕을 지날 땐 숨이 차고 힘이 빠지지만 억새 군락지가 눈에 들어오니 더 이상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 전망대에 들어서면 정 중앙에 돌이 하나 세워져 있다. 무장산의 정상임을 알리는 정상석이다. 전망대 난간에 기대 바라보니 풍경이 더욱 멋지다. 발 밑으로는 끝없이 능선을 따라 유난히 짙은 갈색빛을 띠는 억새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사이사이로 난 끝없는 길 사이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군락지 너머로는 경주의 아름다운 가을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였다고 느낄 만큼 끝없이 이어져 있다. 단풍으로 물든 산의 색깔도 아름다운 풍경에 한몫한다. 힘들게 오른 만큼 보상을 해주는 억새 군락지의 풍경은 경주의 가을 끝에서 꼭 만나야 할 풍경이다.

▲ 민둥산

은빛 찬란한 정선 민둥산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에 위치한 민둥산에서는 매년 가을 억새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끝나는 11월 초가 지나고도 억새는 여전히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민둥산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는 4가지인데 1코스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 2코스에서 출발하게 됐다. 총 소요 시간은 적혀 있는 대로 올라가는 데만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소요된다. 2코스는 초반에 경사진 산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교적 완만한 길이 나온다. 숲을 지나니 평평한 흙길이 나오고 탁 트인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새파란 가을하늘을 마주하며 걷다 보면 거대한 나무 한 그루 뒤로 억새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억새 군락을 볼 마음에 더 설렌다. 
마지막 급경사진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저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마치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난코스인 이 계단을 다 오르면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 중앙에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해발 1,119m의 높지 않은 산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오를 수 있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온 길의 맞은 편에는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아래로 억새 군락지가 있다. 위에서 억새 군락을 내려다보니 부드러운 양탄자 같다. 태양 빛을 받아 유난히도 은빛으로 일렁이는 민둥산의 억새 군락지가 찬란해 보이기까지 하다. 초록빛과 은빛 억새가 뒤섞여 아주 부드러운 색감을 만들어낸다. 시원하게 부는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는 것 같다. 
힘든 등산 뒤에야 맛보는 억새의 풍광! 낮은 지대에서 만나는 억새도 아름답지만 높은 곳에서 발 아래로 펼쳐지는 억새 군락이야말로 가을에 꼭 만나봐야 하는 풍광이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반짝반짝 은색 또는 갈색빛을 내며 춤을 추는 모습이 떠나는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고도 남는다. 가을보다 더 가을 감성 느끼게 해주는 억새풍경을 만나러 떠나보자!

진 은 주  여행객원기자 
홍냐홍의 비행https://blog.naver.com/jineunjoo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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