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한국에서 그는 웬만한 한국배우보다 더 유명하다. 특히 중장년 세대에게 그의 이름 석 자는 조금 더 각별하다.
1980년대 한국영화는 암흑기에 빠져 있었다. 군사독재에 상상력을 포로로 잡힌 채, 우민화를 향한 3S정책과 야합해 스크린엔 온통 한국형 포르노가 넘쳐났다.
애마부인의 대성공에 힘입어 △△부인, XX부인 같은 아류들이 쏟아졌다. 요즘 세간의 화제를 몰고 다니며, 한때 ‘난방열사’로도 불렸던 한 여배우 역시 이들 ‘부인’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스크린에 벌거벗은 여배우들만 난무하고 있을 당시의 최고 흥행배우는 아이러니하게도 ‘영구와 땡칠이’의 심형래였다. 그만큼 아이들 손 잡고 가서 볼 만한 영화가 드물었단 얘기다.
한국영화가 대부분 ‘미성년자관람불가’로 만들어졌으니 학생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외국영화로 쏠렸다. 그중 홍콩영화가 단연 압권이었다. 명절이면 영화관뿐 아니라 브라운관까지 홍콩영화가 석권했다. 당시 홍콩영화계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 선봉엔 ‘레전드’ 이소룡이 있었고, 본격 황금기의 서막을 성룡이 열었다.
이소룡에서 성룡과 홍금보, 주성치에 이르는 1970~80년대의 권법무협영화가 식상해질 무렵, 혜성처럼 그가 나타났다. 그의 등장과 함께 홍콩영화는 ‘무협’에서 ‘누아르’로 진화하며 전 세계 스크린을 사로잡았다. 최후까지 의리의 화신으로 장렬하게 스러져 간 ‘영웅본색’ 속 주윤발은 순식간에 한국 남자아이들의 ‘따거(大哥·큰형님)’로 등극했다.
‘꽃미남’까진 아니고 ‘좀 잘생긴 동네형’ 같았던 그는 홍콩누아르의 선두주자로 갱스터무비뿐 아니라 ‘와호장룡’에선 무협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평을 들었고, 공자와 조조 같은 시대극에도 출연했으며, 로맨스와 코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해, 아시아의 대표배우로 자리매김했다. 90년대부턴 할리우드도 그의 무대가 됐다.
최근 그 ‘윤발이형’이 다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평생 모아온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해서다. 현재 그가 보유한 재산은 8,100억원(56억 홍콩달러). 계산기에 입력하니 빈자리가 남지 않는다. 월 300만원으로 나누면 ‘270,000’이란 숫자가 뜬다. 대한민국 2~3인 가구의 중위소득을 통째로 저축해도 27만개월, 즉 2만2,500년을 모아야 8,100억원이 된단 얘기다.
한 달 용돈 12만원. 이동수단은 주로 대중교통. 길거리에서 사진요청을 받아도 다 들어준다는 그의 얘긴 들을수록 놀라움과 감동 그 자체다. 홍콩이라는 최첨단 도회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세계적 스타의 진짜 모습은 그저 ‘서민’이었다.
“돈은 내 것이 아닌 잠시 보관하는 것일 뿐” “내 인생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영화를 너무 많이 찍어서인가? 내뱉는 말마다 명대사다.
이쯤되면 명배우를 넘어서 대배우, 아니 ‘대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잘 보면 우리 주위에도 대인들이 있다. 사재를 털어 자기 집에도 없는 에어컨을 경비실에 달아준 입주민, 2년치 활동비를 전부 모아 기부한 주민대표, 모친상 당한 직원을 위해 철야근무를 자청한 관리사무소장, 노인에게 사기 치려던 보이스피싱범을 잡은 경비원, 거액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준 미화원, 잠든 이웃들에게 화재를 알리러 뛰어다니다 정작 자신은 질식해 쓰러지고 만 청년, 지난주엔 평생 과일장사로 모은 400억원을 대학에 기부한 노부부까지. 이들이 진정 ‘대인’이고 ‘영웅’이다.
돈 좀 있고 힘세다고, 폼 잡고 허세부리는 건 뒷골목 양아치나 하는 짓이다.
속이 바다 같은 대인, 윤발이형처럼 멋진 ‘따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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