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 춤

열린세상 오정순l승인2018.10.03 15:06:14l1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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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 순  수필가


가을은 초대받는 계절, 결혼식 초청은 누구에게서 오건 반갑다. 대한민국 엄마의 마음이다. 축하의 마음을 담고 드나들 곳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는 일이 지금의 일이라 좋다. 진정성을 담고 다니다가 보면 나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에는 손녀 헬레나가 첫영성체를 받는 날이었다. 빨간 가방에 장미송이를 곁들여 선물 꾸러미를 마련해 들뜬 기분으로 갔다. 손녀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지하방에서 선생님들과 대성당으로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친구들과 미사보를 써보며 웃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부러웠다. 나는 언제나 새 길을 가는 맏이로 살아서 그 길도 내가 먼저 발 길을 내어 부모의 축하를 받지 못했다. 사진을 찍어주고 나오다가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을 만났다. 나는 이 예식에 더 정성스러움을 담지 못한 것 같아서 그녀를 보며 놀랐다. 폴란드가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첫영성체 하는 날이 일생 최대의 잔칫날처럼 거창하게 치러진다. 어른들은 성장을 하고 아이들은 그날을 위한 예복을 갖춰 입는다. 그 나라 특유의 문화이자 종교 행사다. 나는 그 여인을 보면서 그녀가 축하할 대상이 보고 싶어졌다.  
대성당에 들어가 우리는 뒷자리에 앉았다. 앞에 앉은 손녀가 얼른 뒤를 돌아보며 우리가 앉은 자리를 확인한다. 눈이 마주치면서 둘이 브이자 손가락으로  마음이 가 닿았다는 사인을 나눴다. 손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내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면서 가슴이 가득해졌다. 봉헌금을 내고 들어오는데 멀리서 눈을 맞추고 가까이 오자 팔을 의자 밖으로 뻗어 할머니와 스킨십을 한다. 100년을 구해도 오지 못할 것 같은 소통의 기운이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다시 성체를 모시고 들어올 때도 아이는 눈맞춤을 놓치지 않았고 손가락 하트를 그려 보이며 씨익 웃었다. 감성코드가 발달한 아이는 무엇이 필요한 지를 이미 읽었다. 
식이 끝나자 90명의 하얀 천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제대 앞에 섰다. 나는 90명 중에서 손녀를 찾느라고 까치발을 들어 고개를 쳐드는데 손녀도 나를 보고 있다가 얼른 손을 들어 하트를 그리고 내린다.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그 시간에 서로 교감한다고 느낄 때는 실로 행복이 피어나는 자리가 된다. 나는 손녀를 찍는 딸까지 카메라에 잡느라고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손녀와는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 
딸네 가족이 한 아파트의 건너편 동에 살다가 복직을 하면서 안동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낯설게 살다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 때, 우리 부부는 청량리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본디 역이란 곳이 조금 설레고 기다리고 보내며 아쉬움이 눅진하게 밴 곳이긴 하나, 오랜만에 온 기차역사의 분위기는  추억을 더듬는 데 탁월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설 때까지 약간의 조바심이 생겼다. 
멀리서 다섯 살배기 손녀와 눈을 맞췄다. 아이는 발이 더디 움직이는 것이 야속하다 싶게 우리를 알아보고 달려온다. 나도 따라 달렸다. 
아이는 할머니를 목청 돋궈 부르며 눈물을 감추느라고 눈을 크게 뜨기도 하고 실룩거리는 입을 달래느라고 되레 입을 벌리면서 내 품에 다가들었다. 눈물 조절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할지를 경험으로 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아이가 영혼 저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눈맞춤이 일어나면 정말 좋겠다. 우리는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손자손녀는 제 아빠와 제 사촌과의 선약이 있어 자리를 뜨고 우리 부부는 딸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손녀에게 축하를 다 하고 난 끝이라 왠지 횡재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내 딸과 오롯이 눈을 맞추면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일상과 조금 색깔의 여유를 누린다는 것 또한 나에겐 축제다. 자리에 앉자마자 딸과 아들이 마음 써 사준 옷을 입고 멋진 할아버지로 축하하러 올 수 있어서 좋다고 덕담을 해주고 직장 이야기며 문학 이야기까지 넘나들며 대화를 나눴다.  
내 딸이 손녀만 할 때, 나는 그 거리에 눈을 맞췄는데 딸이 거기서 산다. 오늘은 딸이 내게 다섯 살배기가 돼 엄마와 눈을 맞추고 앉아 있다는 게 선물이 된다.  

오정순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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