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언제부터인가 욕조 가장자리에 새까맣게 곰팡이가 생겨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싫다는 느낌이 자주 들면서 나는 이 집 전체가 싫어졌다. 그러다가 리모델링을 할 계획을 가지면서부터 그런 문제가 마음을 흔들지는 않았다.
‘조만간 안 보게 될텐데 뭐…’
그런 생각은 잠시다. 잊기 위한 수작이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면서 여차 하면 그곳으로 이사를 가버릴까 하는 갈등도 일었다. 그 갈등의 주범이 바로 곰팡이란 생각을 하고 나면 어처구니가 없다. 놀랍게도 내 의식세계에는 화장실이 혐오장소로 바뀌어 있는 거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날 잡아 정리 정돈을 해보면서 다시 마음을 기울였다. 
어느 날 인터넷상의 상품정보를 보다가 분명 그 곰팡이를 제거할 수 있다는 홍보문구를 보았으나 믿음이 가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간이 많이 흘렀다. 
잠이 오지 않은 어느 날, 나는 홈쇼핑 채널을 돌리다가  곰팡이를 제거하는 상품을 만났다. 바로 즉석에서 구입을 하고 기다렸다. 상품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튜브의 약을 짜서 곰팡이 부위에 발라 두고 아침에 일어나 그것부터 확인했다. 이게 웬일인가. 곰팡이가 사라지고 새하얗게 변했다. 
감동이다.  ‘앓던 이’가 빠졌다.   
그 작은 거슬림이 나의 행복감을 이렇게나 많이 갉아먹었단 말인가. 일하다가도 웃고 워드를 치면서도 웃고,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환호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남편도 내가 평생 쇼핑한 품목 중에 가장 잘한 물건이라고 환호한다.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걸리적거리는 부분을 제거하고 늘 행복함을 확인하며 살라고 말하고 싶다. 거기에 한몫 거드는 것은 바로 물품 정보다. 보고 듣고 알아보는 가운데 문제해결력이 자란다는 것을 놓치면서 부분으로부터 전체를 싫게 만든다면 그것은 악이다.  
어디 곰팡이뿐인가. 내 목 주변으로 쥐젖이 생기더니 점점 번져서 200여 개가 자라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지저분해 보이고 목욕을 하고 날 때마다 손톱으로 쥐어뜯는 습관이 붙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서 문의할 생각도 하지 않는 나를 봤다. 은연중에 동생들과 만나면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고 하소연까지 하면서 방치하다가 혼 줄이 났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싫으면서도 없애지 않고 두고 산다고 당장 제거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쥐젖 정도에 비길 바가 아니게 마음의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일들이 연이어 나를 잡고 있을 때, 나는 내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글을 쓰고 기도를 하면서 나를 다스렸다. 마음이 편해야 만사가 편한 기질적 특성을 가진 나는 견딜만 하니까 방치한 것이다. 
그러나 물러갈 것들이 멀리 가자 나도 쥐젖 소탕을  했다. 울긋불긋하게 자국이 남았을 때는 그 쾌감을 느끼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리에 쥐젖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깨끗해지니 그 말끔함을 느끼고 싶어서 확인 차 자꾸 있던 부위로 손이 간다.  
어느 인생엔들 한군데 곰팡이 핀 곳 없는 인생이 있을까만  그것으로 하여금 전체가 싫어진다면 부분을 고쳐서 전체를 구제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변화가 가능한 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 바로 곰팡이 제거에 소홀하면서 산 나다. 글 쓰는 일이나 마음 맑히는 일만큼 일상생활에 적극성을 보이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살려고 글을 썼다는 것을 잊었다. 
자연스럽게 안정과 평화의 장소로 자리 매김할 집에 곰팡이가 결정타를 때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본에 충실하고 그 다음에 이뤄 나가야 할 것들을 생각하는 게 우선이나, 시간은 한정돼 있고 이겨나가야 할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하니 순서가 뒤바뀌었다. 
놀랍게도 큰 욕구가 사라지니까 소소한 것들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작은 것의 큰 가치를 발견하고 민망했다.  
곰팡이란 단어는 나에게 환희심을 몰고 왔으므로 성서 문구나 논어 한 장만큼 내 생활에 가치가 커졌다. 제거하는 방법은 생활의 복음이지 않은가. 
내 집의 곰팡이와 달리 인생의 ‘곰팡이’를 제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십자가다. 고통스러워도 지고 가야 한다. 어머니의 인생에 ‘곰팡이’가 찾아왔다. 지울 수 없는 노모의 인지장애는 게으름이거나 무지가 아니라서 있는 대로 보고 견디며 길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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