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요즘처럼 이 말의 의미가 가슴 깊이 와닿아 본 적이 또 있었을까. 끔찍했던 폭염을 떠올리면 지금 이 계절이야말로 신이 내린 축복처럼 느껴진다.
지난 휴가철, 해운대에서도 경포대에서도 대낮 백사장에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다. 피서지를 찾은 사람들이 모두 방 안에만 박혀 있다가 해 질 무렵에야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마치 좀비영화를 연상케 했다. 아이들조차 한낮의 물놀이를 포기할 만큼 날씨는 잔혹했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절기가 바뀌면서 완연히 꺾였다. 요즘 날씨는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청명하고 싱그럽다. 매연과 미세먼지가 자욱했던 대기는 마음껏 심호흡을 해도 좋을 만큼 깨끗해졌고, 습도 또한 적당해서 달리기가 됐든, 걷기가 됐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쾌적하다.
쳐다보기도 싫었던 대도시 머리 위로, 하얀 솜사탕을 수놓은 동해바다 하늘이 이사 왔다. 세상에! 서울 한복판에 속초의 하늘이라니. 지구가 기력을 회복한 걸까?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맑고 깨끗한 날들이 찰나에 불과할 뿐임을.
강아지 솜털 같은 나날이 순간처럼 지나고 나면, 무서운 한파가 닥칠 것이다.
최근 날씨를 보면 여름은 더 지독하게 더워지고, 겨울은 더 무자비하게 추워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진 이상난동(異常暖冬)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걱정하면서도 편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지만, 그때는 지구가 큰 병을 앓기 전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온난화의 가속페달에 더욱 힘이 가해지고 지구의 수인한도를 벗어나니, 이젠 동장군의 기세가 폭력적이다. 최근의 강추위는 더 심한 온난화로 인한 북극권 제트기류의 와해 때문이란다.
더욱이 우린 민소매 셔츠부터 오리털 패딩까지 극과 극의 옷을 구비해야 한다. 한 집에 에어컨과 보일러를 모두 설치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그만큼 더 피곤하게 바삐 움직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지대에 대한민국이 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공동주택 관리도 계절의 변화가 심할수록 힘들다. 여름이 되면 호우로 인한 시설물 침수와 열대야의 정전사태를 걱정해야 하고, 겨울이 오면 수도와 난방 등 각종 배관 동파와 민감한 기기의 오작동에 대비해야 한다. 게다가 태풍은 철을 가리지 않고 습격하니, 아파트를 비롯한 대형건물의 관리자들은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무치는 걱정 속에 살아야만 하는 팔자다.
본래 이 기후대는 좋은 편에 속한다. 우리가 속한 온대지방은 생활하기 편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가장 많이 분포해 왔고, 문명의 발상지기도 하며, 선진국도 많다. 이 지역 사람들이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열심히 산단 뜻이다.
우리나라처럼 한 지방에서 해수욕과 스키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나라는 몇 안 된다. 기후변화의 진폭이 더 커지다 보니 아열대 기후부터 냉대기후까지 다 접하게 된 게 좋은 건 아니겠으나, 이런 기후 덕에 더 부지런히 살 수 밖에 없으니, 차라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덜 힘들 것도 같다.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는 어느 직업 못지않게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직업이지만, 그래도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게다가 중장년들이 선망하는 직종이기도 하다.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해도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합리적 대비 위에 사고 발생 시의 민첩한 사후 대비책까지 잘 세워두면 관리자의 본분은 다하는 것이다.
민족의 명절 추석, 안전제일의 대비책을 잘 세우고 입주민과 관리종사자들 모두 행복하고 평안한 한가위가 되길 기원한다. 더불어 지구의 건강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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