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이 트일 것인가, 아니면 더욱 막혀 질식할 것인가.
한 해가 마감되려면 아직 석 달 이상 남았지만, 올해 공동주택 관리 분야의 최대 화두를 꼽으라면 아마도-막판에 커다란 이슈가 부상하지 않는 한-‘동대표 중임 허용’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현장에선 입주자들의 출마기피로 인한 동대표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중임허용이 절실히 요구돼 왔으나, 과거 장기재임의 부작용과 폐해를 기억하고 있는 여러 관계자들은 중임 허용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 ‘반대’ 소신을 갖고 있던 관리사무소장도 몇 달 동안 동대표 선출에 실패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허용’쪽으로 선회하고, “한 사람의 장기집권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입주자도 막상 자신이 나서야 할 일이 닥치면 주저앉아 버리는, 웃지 못할 촌극이 되풀이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론 중임 허용을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높은 편이다. 만나본 여러 사람들 중 일반 입주민과 관리종사자뿐만 아니라 현직 동대표 중에서도 허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는 별로 많지 않았다. 동대표를 경험해 본 사람일수록 반대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의외였다.
특히 일선 지자체의 담당공무원들은 동대표, 특히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장기재임이 아파트 단지 분란을 야기하고, 악성민원을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그러나 결국 주사위는 던져졌다. 중임 허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이달 1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다만 애초의 개정안에선 모조리 삭제됐던 단서조항들 중 ‘(중임 제한 후보자는) 해당 선거구 입주자 등의 2분의 1 이상 찬성해야’ 동대표가 될 수 있도록 변형유지시킨 것은 “최소한의 제한장치라도 존치돼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중임 제한 완화는 동대표가 될 수 있는 공동주택 소유자의 거주 비율이 50~60% 정도에 불과하고, 생업 등으로 관심이 적은 상황에서 중임 제한 규정에 따라 입대의 구성이 안 되거나, 의결정족수 미달로 입대의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됨에 따른 입주자 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주장은 궁색하다. 입주민들의 관리 전반에 대한 무관심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중임제한 규정이 처음 도입된 2010년부터 출마기피에 따른 동대표 구인난이 벌어질 게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국토부가 입주민들의 참여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여의식 고취를 위한 공청회나 세미나를 한 번만이라도 열어봤다면 여러 전문가와 입주민들로부터 획기적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을 수도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저 ‘안 되니 풀자’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만 엿보일 뿐이다. 어설픈 규제개혁은 시장의 공정한 발전은커녕 영세사업자들을 거대 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키는 비극만 가져온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약자의 피해를 되돌리는 건 ‘쏟은 물 되 담기’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깝다.
중임 제한 규정이 도입된 2010년부터 국토부는 법 시행 이전의 동대표 경력은 모두 무시된다고 했다가, 대법원 판례와 법제처가 다른 해석을 내놓음에 따라 ‘기존 관리규약에 제한규정이 있었다면 중임이 제한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변경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여러 아파트에서 불필요한 분쟁과 소송이 벌어져 왔다. <관련기사 1면>
이번 개정안 역시 관리현장을 혼돈에 빠트리지나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국토부는 관리의 막힌 숨통을 트이게 한다는 선의로 이 방책을 들고 나왔겠지만, 외려 더욱 질식시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그레셤의 법칙을 얼마나 유식한 사람이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고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은 경제분야뿐 아니라 정치 사회부문에서도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낸다’는 의미로 널리 쓰여 왔다.
누군가에겐 족쇄 같았던 규제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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