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아주 오랜 옛날 산사 깊숙한 토굴에서 용맹정진하던 젊은 스님이 있었다. 소나기가 장대처럼 내리던 어느 날 스님은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한 여인에게 반해 사랑에 빠진다. 수행도 멈추고 가슴앓이를 하던 스님은 석달 열흘 만에 상사병으로 피를 토해 죽고, 쓰러진 곳에 붉은 꽃이 피어났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그 꽃을 두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꽃’ 상사화라고 했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6월이면 잎이 말라 스러지고 8~9월이면 꽃대가 올라온다. 

 

그리움으로 피는 절집

▲ 정수사의 노랑 상사화

#정수사
가고자 했던 정수사를 몇 백 미터 앞에 두고 우선 함허동천 입구 슬레이트지붕 아래 평상에 올라가 인삼막걸리 한 병과 생 두부 데쳐 순무김치 한 접시와 마주한다. 설익은 강화 순무의 뒷맛은 달콤·씁쓸·매콤한 맛이 잘 말린 배추 꼬랑지 맛이다. 안개꽃 같이 허옇게 지천으로 깔린 개망초꽃이 초여름 빗소리에 흔들리던 풍경과 뙤약볕 푹푹 찌는 한여름은 매미가 자지러지게 우는 숲을 만들었다. 강화·사기리의 마니산 기슭의 숲길을 오르면 바다가 동그랗게 반원처럼 그려진 풍경을 마주하는 절집 정수사를 만난다. 39년(선덕여왕) 회정대사(懷正大師)가 창건했고, 1426년 함허화상(涵虛和尙)이 중창했다. 함허는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절 이름을 정수사로 바꿨다. 떡시루처럼 얹어진 마니산 암석들의 지맥 아래 함허동천 계곡을 옆에 두고 살짝 걸쳐 앉은 정수사는 대웅보전(보물161호) 문살 한켠에 꽃살문을 뒀다. 문짝을 통째로 새긴 꽃살문은 현병(賢甁)에 꽂힌 모란·장미가 넝쿨을 이루고 있다. 아름답게 채색된 꽃살문과 바다가 눈앞이다. 새로 조성한 주차장에서 산기슭을 따라 가면 쉽게 정수사로 가기 때문에 걸어서 가던 옛 계단 주변은 아는 사람들만의 비밀의 정원이 됐다. 울창한 숲길에 가려진 돌계단 양쪽에는 8월 말일까지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로 노랗게 흐드러진 상사화를 만나니 절집은 운치가 더해진다. 오랫동안 숨겨 뒀던 비밀의 정원은 15일 마니산 정수사 대웅보전 앞에서 ‘제1회 상사화 연희극’ 공연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 성북동 길상사

#길상사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라는 백석의 시에서 ‘자야’는 백석이 기명 진향(眞香)에게 부르던 애칭이었다. 백석과 진향(眞香)의 사랑은 한국전쟁으로 백석은 북쪽에, 진향(眞香) 김영한은 남쪽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됐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듯 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도 평생의 그리움으로 남게 된 것이다. 김영한은 성북동 기슭에 요정 대원각의 주인이 된다. 그후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화된 김영한은 “내 모든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며 재산 일부를 ‘백석 문학상’ 재정에 기여하고 1987년 자기 전 재산인 고급요정을 시주한다. 김영한의 법명은 ‘길상화’로 법정 스님은 1997년 대원각 건물을 개보수 후 ‘맑고 향기로운’ 절의 이름을 길상사로 창건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던 법정 스님의 눈길이 머물렀던 길목마다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 있다. 
9월 길상사에 들어서면 단청 없는 대웅전을 배경으로 단풍나무 아래 꽃무릇은 더욱 붉게 보인다. 그곳에 꽃무릇이 해마다 붉게 핀다. 사랑은 커다란 그리움으로 실재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처럼 길상사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전설로 남을 것이다. 

 

#선운사
선운사는 동백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봄과 가을의 중간에는 여름 내 대웅보전 앞의 배롱나무 연분홍꽃으로 화사하다. 여름이 서서히 가고 배롱나무 꽃이 질 즈음이면 선운천 주변과 도솔암 담장에는 붉은 꽃무릇들이 핀다. 선운사에는 19세기 전반에는 50여 개나 됐던 부속암자들이 현재 4곳만 남았지만 도솔암 근처의 마애불에는 동학 농민 혁명과 관련한 비기탈취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검단선사에게 쫓긴 이무기가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 비경의 만월대, 동백나무숲 등의 명소들이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리는 일들은 동백꽃과 배롱나무, 꽃무릇 등 꽃들의 이야기다.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 시처럼 사람들에게 꽃은 잠깐의 감성으로 피고 한참의 그리움으로 남는다. 꽃길의 아름다운 감성은 속세의 번잡함도 잠시 잊게 만드니 해탈이 따로 없다. 꽃무릇 붉게 피는 날이면 선운사로 한번 가볼 일이다. 바짝 마른 감성도 샘처럼 솟을지 모르겠다.

▲ 숲길에 핀 함평 용천사의 상사화 로드
▲ 꽃무릇. 길게 뻗은 수술들의 몸짓은 나비들이 힘차게 하늘로 날개 치는 듯하다.

#불갑사와 용천사 
고창 선운사 꽃무릇이 알려지며 불갑사, 용천사도 함께 떴다. 영광 불갑사에서 함평 용천사로 이어지는 꽃무릇길은 전국 최대 규모의 군락지다. 영광 불갑사의 상사화는 인위적으로 가꿔진 초입의 꽃길보다는 저수지 끝 지점 참식나무 군락지가 빼곡한 등산로 초입과 모악산 구수재를 넘어 용천사로 가는 숲길의 자연적인 상사화가 볼 만하다. 
불갑사 뒤편과 저수지 근처의 참식나무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봄철에 돋는 새 잎은 노란 잎들이 올망졸망 모여 늘어지고, 가을에 익는 붉은색 열매는 유난히 광택이 나고 향기롭다. 상록활엽교목으로 불갑사가 북방 한계선이다. 저수지를 따라 등산로로 들어서면 동백골 갈림길이다. 왼쪽길은 노루목과 불갑산 연실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올라 구수재에 이르러 왼편으로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함평의 용천사다. 
용천사 주변의 석불과 석불 사이, 황토 담장 옆과 천불전과 대웅전 주변으로 꽃무릇은 붉어 마음이 시리다. 
시인 안도현은 “몸 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 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 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고 했던가. 
8월의 불갑사는 진노랑상사화와 분홍상사화가 피고 매년 9월 중 열리는 상사화 축제 기간 동안에는 붉은 꽃무릇이 만개하고 9월 20일경이면 절정을 이뤄 불갑사와 함평 용천사의 상사화로드는 온통 붉은색으로 채색된다. 물론 상사화와 꽃무릇은 다른 꽃이다. 꽃무릇은 꽃대가 먼저 올라온 뒤 꽃이 피고, 꽃이 지면 잎이 나온다. 개화 시기는 8월 말에서 9월 사이고, 상사화는 7월 말부터 8월 사이에 꽃이 핀다. 잎이 먼저 나오고, 잎이 지면 그때서야 꽃이 핀다. 이름은 어떠리. 상사화든지 꽃무릇이든지.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니 상사화라는데…. 꽃잎을 뒤로 젖히고 꽃대처럼 길게 뻗은 수술들의 몸짓은 붉은 나비들이 힘차게 하늘로 날개 치는 듯. 꽃무릇의 애틋한 몸짓은 그리움의 향기로 핀다. 상사화가 꽃잎을 떨치면 가을이 시작되고 피안으로 가는 듯 붉은 날갯짓은 눈에 삼삼해 그 길에 발길 올린다.

▲ 한국 고유종인 백양사의 백양꽃

상사화의 잎은 봄철에 나오고 넓은 선형이며 6~7월에 잎이 마르고 8월에 꽃대가 올라온다. 반면 석산(꽃무릇)은 꽃대가 지면 잎이 나와 상록으로 겨울을 지내고 6월이면 완전히 마른 후 다시 9월에 꽃대를 올린다. 사찰 근처에 많은 이유는 이 식물에서 추출한 녹말로 불경을 제본하고, 탱화를 만들 때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상사화의 종류는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한 한국 특산식물 백양꽃과 제주상사화, 위도상사화, 분홍상사화, 노랑 또는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 개상사화가 있다. 상사화와 석산은 다른 꽃이지만 불가에서 모두 상사화라고 하는 이유는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에서 연유했다.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상사화가 피는 계절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