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전 기 택 관리사무소장
서울 강남구 거평프리젠아파트

뭇 장정들이 육군에 징집돼 가는데 나는 우연히 해경 화보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나온 경찰 모습이 보기 좋아 망설임 없이 해양경찰에 지원해 1978년 가을까지 약 36개월을 복무했다.
훈련은 진해훈련소, 실무는 속초에서 쭉 60톤급 경비정을 타면서 어선들 보호 임무와 함께 삼팔선 이전인 어로한계선 지킴이 역할을 했다. 
여름바다의 즐거움보다는 삭풍으로 팔랑거리는 겨울 파도가 갑판 위를 뒤 덮으면 바닷물이 살짝 얼기까지 해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이야 경찰 등 공무원이 되려면 노량진 학원에서 상당한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직업 경찰로 눌러 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향인 서울로 돌아와 금융회사에 입사했다. 때마침 제대 2년이 지난 1980년에 회사 하계휴양소가 예전 군대 생활을 했던 속초로 지정됐다. 옛 상관에게 인사할 요량으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정장(경비정 캡틴) 집을 방문했다. 나를 본 가족은 뜻밖에 정장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다. 알고 보니 안개 낀 날 해상 맞교대를 하다가 충돌사고로 60톤급 경비정이 침몰해 속수무책으로 근무하는 인원을 다 잃은 것이었다. 아프고 슬픈 일이 내가 제대하자마자 일어나서 한동안 충격 속에 지냈다. 
그런데 어언 40년 가까이 흐른 최근에 까마득히 잊었던 그 일이 YTN과 KBS 뉴스에서 보였다. 그때 침몰한 경비정 대원 유족들이 선체를 인양해 유해를 안치하게 해달라는 애끓는 호소를 하고 있었다. 그 시절은 지금과 달리 군·경 사고가 일절 보도되지 않아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었을 때다. 민주주의 발전으로 인권이 최우선하는 이즈음 나라를 위해 소중한 생명을 바친 이들의 유해를 반드시 찾아야 하리라. 뉴스에서 마주친 유족들의 한이 풀릴 수 있도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공감대를 형성해 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이러한 사건 외에 속초에서의 에피소드 중 하나는 평상시 해상경비 근무를 마치고 항구에 입항하면 아침운동으로 속초해수욕장까지 구보를 하곤 했는데 거기서 우물가에 앉아 있는 웬 처자를 보게 됐다.
한 번은 목이 말라 우물물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우물가에서 급히 물 마시면 체한다고 나뭇잎 하나 따서 물그릇에 넣어줬다는 일화도 있지만 운동 후 갈증에는 넉넉한 물 한 그릇이 더 급했을 것이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우물가가 있었던 것도 개발되기 전의 낡은 건물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해경지구대 사무실에는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조차 거의 없었던 관계로 근무자들에게 웃옷을 벗고 런닝셔츠 차림 근무를 허용하는 고육책을 썼다. 
부채 하나로 삼복더위를 이겨내던 광경도 기억에 남는다. 
한편으로는 해경여름휴양소를 가까운 속초해수욕장에 설치하자 거기에 모인 대원들 눈에 그 처자가 눈에 띄었겠지만 제대를 몇 개월 앞둔 선임인 내가 관심을 쏟으니 후임병 누구 한 사람 눈길을 못 줬다는 후문이다. 
그 옛날 속초해수욕장을 관리하는 형부 일을 도우러 저 멀리 타향에서 올라 왔던 그 처자는 시나브로 나의 손에 이끌려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됐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손주들도 여럿 보게 된 지금 그러한 크고 작은 일들이 먼지 쌓이듯 스며들어 인생살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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