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에 겨워 여름이 오면 가슴을 활짝 열어요…. 여름은 젊음의 계절, 여름은 사랑의 계절”
1978년 제1회 해변가요제 그랑프리 수상곡 ‘여름’(징검다리)의 노랫말이다.
해변가요제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비운의 방송국 TBC가 그 전 해 열린 MBC 대학가요제의 성공에 자극받아 만든 가요제다. 사실상 한번으로 단명한 대회에서 왕영은, 구창모, 배철수, 이명훈, 이치현, 김성호, 조인숙 등의 가수가 배출되고, ‘여름’ 외에도 ‘구름과 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그대로 그렇게’ ‘바람과 구름’ 같은 시대를 풍미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중에 개그계의 황제로 군림한 주병진도 출전했다. 한 아마추어 가요제에서 이렇게 많은 스타가 탄생한 사례가 또 있었는지 궁금하다.
노랫말처럼 여름은 젊음의 계절이었다. 몸집보다 큰 배낭을 짊어 메고 도보여행 떠나는 모습은 청춘의 상징이었다. 버너와 코펠, 허름한 텐트 하나만 있으면 산과 바다, 강과 계곡 어디든 못 갈 곳이 없었다.
여름엔 어디서나 젊음이 넘쳤고, ‘사랑의 계절’답게 로맨스도 불타올랐다. ‘바캉스 베이비’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일반명사였다. 찬바람 불 무렵부터 산부인과가 호황을 누리는 건 통계수치로도 확인된 사회흐름이었다. 일부 기성세대는 청춘의 타락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겨우(?) 그런 걸로 사회가 병들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은 활기차고 정열적이고 매혹적이었다.
여름이 젊음의 계절이 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돈이 없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청춘은 가난하다.
원래 여름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계절이었다. 난방과 옷 걱정이 없으니 생활비가 적게 들고, 먹거리도 풍성하고 쌌다. 해가 지면 조금씩 선들바람이 불어와 그럭저럭 견딜만했으니 부채 하나로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게 모두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여름은 이제 더 이상 젊음의 계절도, 빈자를 위한 계절도 아니다. 낭만과 여유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오존과 자외선이 작렬하는 백사장에 텐트를 치는 건 미친 짓이 돼 버렸고, 쪽방촌에선 연일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가축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더울수록 잘 익는다는 과일과 채소들은 오히려 타들어간다. 바닷물이 끓고, 극지방 얼음도 힘겹게 버티고 있다. 수도꼭지에선 온수가 나오고. 에어컨 없이 창을 열고 생활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은 사방에서 내뿜는 이웃의 실외기 열기에 더블펀치를 얻어맞고 있다.
그럼에도 외국에 비하면 우린 약과처럼 느껴진다. 연일 40℃를 훌쩍 넘긴 포르투갈을 비롯해 아일랜드, 스페인, 그리스 등 유럽 전역에 산불이 번져 피해가 속출하고, 미 캘리포니아에선 우주에서도 보인다는 역대최대 산불이 나 소방관과 군대 등 1만4,000명을 투입하고도 열흘이 넘도록 진압하지 못했다. 
병든 지구의 역습이다. 스폰서를 등에 업은 일부 어용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허구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새빨간 궤변이었다. 전 세계가 폭염지옥이다.
그런데 한국의 위기는 자연재난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구절벽 사태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싸고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암울한 미래에 절망한 청년들은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상태다. 
다급한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고 있다. 지난 화이트데이엔 기획재정부가 ‘청춘남녀 인연만들기’ 행사를 주최했고, 세종, 동해, 진주, 장흥, 인천, 안동, 의성, 대구, 서울, 부산, 청주, 태안 등 전국에서 커플 맺어주기 행사가 열렸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싱가포르와 일본은 훨씬 먼저 ‘청춘사업’을 국가적으로 개최했고,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 중국조차 산아제한을 철폐하고 출산장려에 나섰다. 나라가 매파(媒婆)가 됐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지구는 뜨거워지는데 청춘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전혀 다른 얘기 같지만 답은 의외로 같은 곳에 있을지 모른다.
우리 아이들에게 불타는 폭염지옥을 물려준다면 인류는 어차피 파멸이다. 빈자와 약자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여름이 악마로 돌변했다. 이젠 인류가 지구를 되살려야 할 차례다.
여름이 다시 풍요롭고 아름답게 회복된다면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사랑이 피어난다. 커플은 휴가지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할 것이다. 지구가 회춘하면 청춘도 살아난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