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고생 A양은 얼마 전 모처럼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기겁했던 적이 있다.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밤 시간에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던 중 나무 위 현수막에 곤충의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작은 매미나 풀벌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커다란 바퀴벌레였다. 놀란 A양이 아빠의 손을 꼭 잡고 가던 중 길바닥에서도 두 마리의 바퀴벌레를 더 발견했다. 낮엔 숨어 있다가 밤에 그렇게 바람 쐬러(?)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 후로 할머니 댁에 다시 놀러가고픈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A양 할머니 댁은 대도시의 S동에 위치해 있다. S동은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넓은 산과 공원을 끼고 있어 과거엔 인기 있는 주거지였으나, 외곽에 대형 신도시들이 개발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노인만 남은 전형적인 구도심으로 전락했다.
담장이 기울고, 외벽에 금이 갔다. 과거엔 대학교를 비롯해 인근에 학교들이 밀집해 있어 아침저녁으로 학생들이 넘쳐나고 상권도 활황이었지만, 이 학교들이 모두 신도시 등으로 옮겨 가면서 빈 가게가 속출하고 동네는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몇 년 전 지역재개발 소식이 돌아 땅값이 잠깐 들썩이기도 했지만, 시 재정이 어려워져 현재는 방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언제 재개발이 단행될지 몰라 집수리를 하지 않는다.
과거의 영화가 흘러간 자리엔 노인과 길고양이들만 남아 터벅터벅 슬럼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풍경은 대도시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도시가 화려하게 개장하고 첨단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는 이면에는 늙은 도심의 초라한 그림자가 구부정하게 숨어 있는 것이다.
초점을 신도시에만 맞추는 사이 구도심은 날로 쇠락했다. 슬럼화 문제는 중규모 도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마침내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는 ‘마을관리 협동조합’ 구상안을 내놓고 지속가능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발표했다. 노후주택을 정비하고, 공용주차장 등 기초 생활인프라 공급을 통해 노후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1면>
핵심방안으로 주민이 조합원인 ‘마을관리 협동조합’을 구성해 재화와 서비스를 공동구매하고, 주민 고용을 통해 일자리도 창출한다. 지역주민이 주체가 돼 마을을 되살린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도시재생, 특히 구도심의 다시 서기는 단기간에 완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낙후한 기간시설을 정비하는 게 급선무긴 하지만,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선 젊은 직장인과 신혼부부 등이 찾아와 보금자리를 꾸미고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주민 주체의 협동조합 설립은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토부는 도시재생의 효과가 지속성을 갖도록 유지 관리하기 위해 신협, 새마을금고 등 지역 금융기관이 초기사업비를 지원하고, 주택관리는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수리와 사회적 주택은 LH와 지방공사, 에너지 자립은 산자부와 에너지공단, 마을상점은 지자체와 사회적기업진흥원이 맡도록 하겠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마련했다.
신도시 고급아파트는 젊은층이 진입하기엔 그 층수만큼이나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문턱이 없는 구도심 되살리기에 정부와 각 단체들이 힘을 모으고 젊은이들이 가세한다면, 아이들이 기겁하는 바퀴벌레 대신 풀벌레들이 합창하는 청춘마을로 탈바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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