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재임→불신심화→출마기피 악순환 고리 더욱 고착화 위험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현재 법규정 왼쪽 칸 붉은색 글씨로 표시된 단서조항이 개정안에는 모두 삭제>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발표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 입법예고’에서 동대표의 중임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500가구 미만을 삭제해 모든 공동주택으로 확대했으며, 해당 선거구 입주자 등의 3분의 2 이상 찬성규정을 없애고, 후보자 중 동대표를 중임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중임한 사람은 후보자 자격을 상실한다는 단서조항까지 빼버려 사실상 무제한 연임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직업적 동대표’의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국토부가 불법·탈법이 판쳤던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동대표 중임제한 완화(예정)에 대한 반대여론이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 입법예고를 통해 동대표 중임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동대표 중임제한 규정(2년 임기에 한번만 중임 가능, 최대 4년)은 지난 2010년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강제규정으로 삽입됐다. 그 전에도 전국의 상당수 아파트에서 관리규약에 자체적인 중임제한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었지만, 법적 구속력이 약해 많은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 일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역임한 사람의 경우 다른 동대표보다 자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해 일반 입주민뿐 아니라 입대의 내부에서조차 불신과 의혹을 자초해 왔다. 왕처럼 군림하며 입주민들을 무시하는가 하면 관리비와 장기수선충당금을 쌈짓돈처럼 자의적으로 집행하거나 사업자금으로 유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장충금으로 명절선물을 구입했다가 처벌받고, 자신의 명의로 장충금을 예치한 회장이 이를 담보로 2억원을 대출받아 사용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수억원의 하자보수보증금과 잡수입에 대한 불투명한 사용내역으로 충돌을 빚은 단지도 상당수에 이른다. 공사 수의계약과 관리비 전용으로 물의를 빚은 케이스는 너무나 많다.
대부분 장기간 재임으로 인해 스스로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견제에 나서야 할 입주민이나 관리사무소장도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예전엔 언론의 관심이 적었으나, 얼마 전부터 비리 관련 기사가 집중 보도되면서 입주민들의 주민대표에 대한 불신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동대표 출마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돼 왔다. 결국 소수의 장기재임으로 인한 이너서클 형성과 비리만연 현상이 뜻있는 입주민들의 참여의식을 꺾어버리는 것이다.
경찰은 과거 몇 차례 대대적인 아파트 관리비리 수사를 벌인 적이 있다. 
수사결과 발표에서 경찰은 아파트의 문제점으로 “입대의에 막강한 권한이 집중돼 부패가 용이하다”는 점을 첫손에 꼽으며, “입대의 회장과 동대표의 장기간 재임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차원에서 장기재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치러진 6·13지방선거에서 주민대표 직함을 가진 당선자가 32명 배출됐다.(6월 20일자 3면 보도) 본지 자체조사이므로 실제론 더 많을 수도 있다.
이게 주된 이유는 아닐지라도 한 아파트단지의 입주민을 대표한다는 신분이 크든 작든 당선에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리와 무관하게 정치적·생계적 이유만으로도 동대표직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더 생기는 것이다. 
일각에선 “중소도시까지 공동주택 거주자가 증가하는 추세로 볼 때, 동대표 선거마저 현실정치판과 유사하게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임기제한이 사라지면 더욱 격화될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현재는 동대표 구인난이 상대적으로 심한 ①500가구 미만의 단지에 한해서 ②해당 선거구 입주자 등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아야 하고 ③후보자 중 중임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중임한 사람은 후보자격을 상실하도록 돼 있으나 이번 개정안에서 이 3개의 단서조항이 모두 삭제돼 더욱 커다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입주민은 “지금도 현직 동대표에 맞서 출마하기가 꺼려지는데 이런 단서조항마저 사라진다면 일반 입주민의 의지가 더욱 희박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또 다른 입주민은 “주민대표 장기집권이 가능해지면 과거의 폐단이 되살아날 게 뻔한데도 이런 개정안을 내놓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과연 정부가 주민들의 참여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중임제한 완화를 찬성한다는 한 동대표는 “극심한 동대표 구인난을 겪는 아파트에선 제한이 오히려 입주민들에게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며 “완화는 필요하지만 한 사람이 평생 주민대표를 하도록 방치하는 건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한 관리직원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무렵엔 오래된 동대표들 짐을 들어주거나 집안일 거들어주는 걸 당연시했었다”며 “그런 갑질이 많이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날까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아파트 사람들은 이번 예고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출마자가 없는 현실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란 설명에도 불구하고, ‘입주민들의 참여의식을 말살시키는 정책’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불씨가 더욱 타오를 기세다.
대한민국 아파트는 인류역사상 초유의 주거실험이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국가도 우리처럼 대규모 단지를 이룬 초고층 건축물 안에 집단적으로 모여서 살아본 적이 없다.
따라서 관리체계 역시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소수에게 평생 맡길 것인가, 다수의 참여를 끌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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