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운전하는 사람들은 잘 안다. 화도 중독된다는 것을. 막히는 도로에서 새치기하거나, 멀쩡한 도로에서 갑자기 정지해 사고를 유발하는 차를 만나면 당연히 화가 난다.
한번만 꾹 참으면 아무 것도 아닌데,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화가 났을 땐 운전이 난폭해지고, 위태롭게 길을 건너는 아이나 노인에게도, 심지어는 동물에게도 욕을 한다. 로드레이지(road rage) 발병이다.
환경에 따라 달라질 때도 있다. 애인과 드라이브 땐 화를 참지만, 아내가 되고 나면 참지 않는다. 상사를 모시고 갈 땐 인내력이 무한대지만, 부하직원을 태우면 제멋대로다.
화를 다스리는 일은 정말 어렵다. 오죽하면 화를 잘 참는 사람에게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란 엄청난(?) 호칭을 붙여줄까.
근래 들어 도로만큼이나 화를 잘 내는 공간이 생겼다. 전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화내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것도 무서운 속도로.
문제가 심각한 건 그렇게 화를 내는 장소가 바로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가장 편히 쉬어야 할 공간, 집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다.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승강기가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중학생이 갇히자 어머니와 할머니가 합세해 같은 여성인 관리사무소장을 무차별 폭행했다. 7년간이나 소장을 의심하며 고소고발해온 서울의 입주민도 있다. <관련기사 1면>
폭행 입주민은 “아들이 갇혀서 화가 났는데, 소장이 늦게 와서 때렸다”고 말한다. 소장의 도착시각은 아침 8시 25분, 원래 출근은 9시까지다. 경찰조사에서 원만하게 합의하겠다고 했던 그는 돌변해 장문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내용은 장황하지만 핵심은 ‘맞은 소장만큼이나 아들의 정신적 충격도 크다’는 것. 그리고 소장이 그렇게 많이 다쳤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용증명은 소장뿐 아니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위탁관리회사에도 발송됐다. 위로와 사과보다는 소장을 압박해 굴복시키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7년간 관리사무소를 괴롭힌 서울의 입주민도 이해할 수 없긴 매한가지. 2011년부터 난동·폭행을 시작한 그는 관리직원들에게 “말 안 듣는 개는 몽둥이로 패야 한다”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2,000만원을 지급하란 판결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2년 전엔 소장이 2억원을 횡령했다는 터무니없는 고소장을 넣었다가 무혐의로 결론 나기도 했다. 그는 다시 지난해 업무상배임 및 횡령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그마저도 무혐의 처분했지만, 고등검찰청 항고 후 재조사 명령이 내려졌고, 결국 소장에게 200만원의 벌금형이 가해졌다. 외부주차수입을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전입하지 않고, 그만큼을 입주민들의 관리비에서 차감해 줬다는 이유다. 최종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소장이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이고, 벌금형에 처해질 만큼 위중한 범죄인지도 의문이다.
그는 수년간의 실패를 딛고 마침내 소장을 능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에게 잘했다며 박수 쳐줄 입주민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소장을 쫓아내고 후임자가 부임하면 그의 괴롭힘은 중단될 것인가?
분노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위층 입주민을 살해하고 담배연기 때문에 주먹을 휘두른다. ‘로드레이지’를 넘어 이젠 ‘아파트레이지’라 불러야 할 판이다.
가정에서의 화, 입주민 간의 충돌과 분노가 아파트의 하부구조에 위치한 소장과 경비 등 관리직원들에게 표출되고 있다.
집단중독 증세를 보이는 ‘아파트레이지’, 냉철한 처방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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