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이야기

열린세상 오징순l승인2018.07.02 14:50:12l10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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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 순  수필가

전 세계 축구팬들이 즐기는 월드컵 시즌이 시작됐다. 아파트마다 심야에 불 밝힌 집이 늘어나고 중계방송이 있는 시간대에는 우리 집 텔레비전의 채널이 고정된다. 나는 잘 하지 못해도 몸을 직접 쓰며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체육대회 날이면 전 종목을 다 뛰다시피 해도 축구는 해보지 않았다. 여자 축구 종목이 있었다면 어려서부터 릴레이 선수였으므로 그 종목도 아마 뛰었을 것이다. 몸 쓰기를 즐기다 보니 체육과가 없는 대학에서 학교 대표 탁구 선수가 돼 2년간 연속 우승을 해봤다. 마지막 결전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그날 이후 나는 승부 가리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됐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두근거리던 심장 소리는 잊혀지고 우승이라는 좋은 기억만 남아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낸다.   
나는 누가 되든 결혼 상대자와 취미가 어느 정도 맞기를 바라며 어지간한 취미면 공감대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보니 신랑의 취미가 유일한 축구관전이라고 했다. 해보지 않은 그 한 가지를 그가 좋아한다고 할 때의 그 낭패감이라니…하지만 그러구러 세월이 가면서 40년을 넘겼더니 귀가 열리고 눈이 트인다. 마치 해설자처럼 경기를 분석하기도 한다. 세월이 키우는 능력을 무엇으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한 가지 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어느 선수가 실수를 한다고 해도 비난을 하지 않는다. 되레 감독 심정이 어떨까 걱정스럽고 실축한 선수의 입장이 헤아려져 우리나라 게임은 보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골인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저들의 환호하는 표정을 좋아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환호의 몸짓을 만난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기에 같이 행복해진다. 감정이입이 잘 되는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절정에 이르러 행복할 때 동감한다. 타인의 감동을 빌려서 내 가슴에 역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어느 편이든 한두 골 정도 터지기를 바란다.  
남편은  펠레를 좋아해서 그 선수의 이력을 줄줄이 외우고 성적이나 에피소드도 사전처럼 꿰고 있다. 무엇이나 알면 더 재미가 나겠지만 축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의 관전매력이나 쾌감은 해본 사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발 기술을 구사해보려고 노력해본 사람은 선수가 성공하면 짜릿함이 실감나고 잘 안됐을 때의 안타까움 또한 깊어서 관전의 열도가 달라진다. 어느 종목이든 선수로 뛰어 본 사람은 누가 무슨 실수를 해도 탓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자신의 기량을 최고조로 만들어 뛰다가 그런 것인데 보는 사람은 욕하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선수의 기를 꺾는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이번에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 전에서도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온통 ‘메시 메시’하면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결과는 1대 1로 경기가 종료됐다. 메시가 패널티 킥을 실추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지만 나의 견해는 달랐다. 상대 편 골키퍼가 잘했다고 평하는게 훨씬 서로에게 좋은 평이다. 
 아르헨티나가 메시를 앞세워 승리를 부추겨서 오히려 메시의 부담을 키웠을 수도있다. 본선에 처음 출전한 아이슬란드 팀 앞에서 몇 점 앞서 선점해 우쭐거리고 싶은 욕구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나,  경기 내용은 상대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간과했을 수도 있다. 
 다음 날 아침 기도 중에 축구선수 메시를 기억했다. 그는 지구촌 어딘가에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기도를 해준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 각 나라 출전 선수들에게도 지나간 실적으로 아파하지 않게 도와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내가 위로를  받는다. 내가 어두울 때 지구촌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했겠구나 싶고, 내가 힘들 때 누군가의 응원을 듣고 오늘까지 살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축구 게임은 자국선수들의 개인기가 출중해도 팀워크가 이뤄지지 않으면 골을 얻는데 성공하기가 어렵다. 기량을 발휘해 상대팀을 이긴다는 것은 상대팀의 전술을 파악하고 헛점을 찾아 저마다 길러진 능력을 순간순간 감각적으로 대응하며 풀어나가야 가능하다. 수학문제를 풀듯 되지는 않는다. 변수의 연속이라서 골인이 정답이 되고 만다. 골이 터지지 않은 경기는 아무리 풀어가는 과정이 훌륭해도 정답이 될 수 없어서 수고의 대가가 없게 된다. 여태껏 보지 못한 경기 방식이었을지라도 골이 터지면 그것은 잘 푼 수학문제인 것이다. 운동 경기는 그렇게 냉정하고 투명하다. 즉석에서 답을 보여주기 때문에 볼 맛이 개운하다. 
여전히 월드컵 경기는 이변의 역사를 쓰며 무르익고 있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이 누구든 나에게는 그들이 신들의 몸짓 같아만 보인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관전하는 사람은 실황중계도 이제 게임 판으로 보인다. 그래도 소환할 기억이 없다면 꿈꿀 시간도 갖지 못한다. 만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산다는 것은 훗날의 행복을 위해 보험 드는 일이다.  

오징순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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