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동대표는 참 피곤한 직책이다. 특히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 뽑히면 해야 할 일이 꽤 많다.
단 1원이라도 관리비를 지출하는 경우엔 빠짐없이 결재해야 하고, 행여 잘못 집행되면 행위자, 관리주체와 함께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 
입주민들은 아파트에 크든 작든 문제가 생기면 일단 관리사무소와 동대표부터 찾는다. 심한 경우엔 단지 밖에서 벌어지는 공사나 잡상인의 소음까지 해결해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다. 
최근엔 아파트 관리비리가 여러 언론을 타면서 동대표, 그중에서도 특히 입대의 회장을 보는 입주민들의 시선에 불신과 의혹이 크게 늘었다.
무보수명예직이란 자부심으로 일하지만 의도치 않게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당하기도 한다.
동대표를 해본 사람들은 “보람을 느낄 때도 있지만 피곤한 일이 많고, 무엇보다 의심받는 게 싫어서 오래 하고 싶지 않아, 한 번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생기는 것도 없이 부담만 큰 자리’란 것이다.
동대표의 임기를 제한하는 법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는 비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경찰은 과거 몇 차례 대대적인 아파트 관리비리 수사를 벌인 적이 있다. 5년 전엔 동대표와 회장, 공사 및 용역업체 관계자, 소장과 관리직원 등 581명을 검거해 이 중 5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경찰은 아파트의 문제점으로 입대의에 막강한 권한이 집중돼 부패가 용이하다는 점을 첫손에 꼽으며, 특히 “입대의 회장과 동대표의 장기간 재임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주민대표 자리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임기제한을 철폐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근거는 맡으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동대표도 해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으니 임기제한을 없애 ‘전문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의 몇몇 아파트에서 동대표 구인난을 겪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의결기관의 부재로 인해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도 맞다. 그래서 국토부는 ‘동별 대표자를 미처 선출하지 못한 경우에는 (중략) 급박한 사정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새로운 동별 대표자가 선출될 때까지 그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다’고 회신한 바 있다. 대표궐위에 대비한 비상대책인 셈이다.
이런 대비책이 있는데도 임기제한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 오히려 관리현장에선 “임기제한을 없애면 일반 입주민들 사이에 동대표 기피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표자리를 내려놓지 않으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다른 입주민의 출마를 방해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달 치러진 6·13지방선거에서 입대의 회장을 비롯해 아파트 주민대표 직함을 가진 당선자가 32명 배출됐다. 본지 자체조사이므로 실제론 더 많을 수도 있다. 이게 주된 이유는 아닐지라도 주민대표의 신분이 당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비리와 무관하게 정치적, 생계적 이유만으로도 동대표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동주택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증가하는 현 추세로 본다면-지금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지만-나중엔 아파트 동대표 선거마저 현실정치판과 유사하게 당파싸움으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임기제한이 사라지면 싸움이 더욱 격화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전문화를 얘기하지만, 이는 거꾸로 다수 입주민의 참여를 가로막고 기득권을 강화하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권력은 분산하고 제한해야 부패하지 않는다. 여기엔 입주민 참여가 필수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역사는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다. 동대표를 해본 사람보다 안 해본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나서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서게 만들까’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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