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태엽 풀린 시계처럼 두 개의 바늘 
앞으로 흐르지 못 할 때 
과거 속을 헤매는 유령처럼 
비상구 찾아 헤매곤 했다 
뚜렷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시야를 가리는 안개의 정체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문득 
나뭇잎 끝에서 안개 떨어지는 소리 들었다
누워 뒹굴다 옆을 보니 
보이지 않는 손이 안개의 베일을 걷어 내자 
돌부리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내 몸은 뜨거운 태양이 되고 흙먼지가 되고
비바람에 흔들려 찢기는 잎이 되고
안개가 되었다 안개에 젖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안개 걷힌 뒤, 쏘아대는 뜨거운 땡볕에
살갗은 더 단단해져
몸 안에 빛깔 좋은 육즙 만들어 낸다는 것을
몸은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좋은 포도주란
오래 저장 되어 있던 세월보다
자신이 몸담았던 강한 햇살과 
눈보라에 시달리던 시고 떫고 아픈 시간 
몸 안에 가라앉힌 육즙이란 것을 

내 몸 안에 50년산 포도주가 흐른다

정  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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