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여보, 요즈음 나에게 청담공원은 친구야.”
“나에게는 헬스장이고, 힐링 장소고, 연인이야.” 
한참 일선에서 일할 때는 곁눈질도 주지 않던 남편이 공원사랑에 푹 빠졌다. 아파트 곁에 바로 붙어있는 청담공원은 내게 자연이라는 이름의 노트북이다. 온갖 정서적 자료가 다운로드돼 저장돼 있다.  
공원 곳곳에 놓인 장의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담은 인생을 다운로드해 저장하고 있어서 수시로 다른 사연이 기억에서 피어난다. 오늘은 농민 문학의 대표 소설가인 이무영과 가톨릭 신자로 신앙시를 주로 쓴 시인 구상의 아내가 그 장의자에 앉아 오후 한나절 담소를 나누던 풍경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던 분들인데 그 장의자 곁을 지날 때면 ‘열어보기’ 버튼을 누른 듯 이야기가 기억에서 튀어오른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릿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던 노장들이 저 하늘에서 나를 보고 무어라 인생 충고를 할까 상상하면서 장의자에 앉아본다. 염수정 추기경도 앉아 쉬어가던 그 장의자인데 의자는 무슨 사연을 다운로드했을까. 곳곳에 놓인 장의자마다 다운로드한 인생이 도서관의 책처럼 쌓여있을 것이다. 그 ‘장의자 폴더’에는 활짝 웃을 수 있는 내용보다는 다소 어둡고 슬픈 이야기가 더 많다.  
암 선고를 받고 공원으로 먼저 들어와 꺼이꺼이 울면서 한숨을 토하던 여인, 어쩌다 금전적 실수를 해 가족들에게 지탄을 받고 공원으로 들어와 축 쳐진 어깨를 가누지 못하던 여인, 반려견을 잃고 멀리 보내지 못해 공원에 유골가루를 묻고 잔돌로 경계석을 쳐두던 여인, 한동안 매일 울다 가는 모습도 스캔해 뒀다. 불법인 줄 알고도 멀리 보내지 못하는 그 여인의 심정은 헤아려지지만 그 행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에게는 공원과 함께 한 30년 역사가 책꽂이의 책처럼, 컴퓨터의 사진파일처럼 기억 안에 저장돼 있다. 숲의 나무들은 수많은 사연을 받아 품고 살면서 살랑거리는 바람 결에 날려버리지만, 저들도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꺾이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시건은 파라곤 태풍이 불어간 다음 날 아침, 숲에 갔을 때였다, 거대한 숲의 요정들이 장난질을 한 듯 이파리가 잘리고 나무가 부러져 어지러웠다. 그러나 은은한 향수 통을 부어놓은 듯 감미로웠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들숨을 크게 쉬며 숲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고 거기에 밑둥이 부러진 나무가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무의 생명수 저장고를 보았다. 백두산 천지의 물처럼 움푹 패인 자리에 불그스름한 물이 고여 있었으며 그 물에서는 향내가 풍겼다. 나는 나무의 속살이 그렇게 뽀얗고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다. 신령스러운 광경이었다. 
어느 사연은 글로 써서 드러냈으니 USB로 옮겨져 담겨있는 셈이다. 발표된 글을 수정해야만 할 것 같기도 하다. 나이와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고 들린다. 때로는 나무의 말인 듯 빌려서 글을 창작하다 보면 달리 표현해야 좋을 것 같을 때가 도래한다. 
다양한 사연은 굽이진 오솔길에도 묻혀있고 움푹 들어간 언덕에도 스며있다. 지나갈 때마다 제목이 보이듯 영상이 떠오르면 나는 곧바로 내 컴퓨터에 수정해 ‘덮어쓰기’를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를 순화시키고 뒤룩거리는 배 둘레를 날씬하게 만들어주는 곳, 공원 길에는 유치원 원아들의 발걸음 소리와 강아지들의 뜀박질 소리도 기록돼 있다. 일일이 적어두지 않아도 철이 달라지면 생각이 나고  바람결이 달라져도 기억이 다르게 소환된다. 
공원이 어느 때는 스승 같고 어느 때는 하느님 같고, 어느 때는 의사 같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편안한 친구가 됐다. 언제나 가면 있는 친구, 늘 생명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 변화를 보여줘서 지루하지 않은 친구,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해주는 친구, 말을 걸어도 피드백을 하고 말을 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가와 등을 도닥거리는 친구, 그런 공원이 나는 좋다.
어느 날, 나이가 몹시 들어서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 나는 ‘열어보기’를 클릭해 그동안 저장해 둔 사연을 다 꺼내 읽고 보고 하리라. 날마다 글로 써서 정리하고 내 안에 마구잡이로 넣어둔 내용을 삭제하리라. 그래도 또 세월이 가면 삭제할 사안이 많아질 것이 자명해서  나는 운명적으로 글을 써야 할 것만 같다. 아마도. 다운로드한 글의 폴더를 다 비우고 갈 수는 없어도 가볍게는 해야 할 것 같다. 
요즈음 나는 창작글을 인터넷상의 카페에 저장하고 있다. USB나 다름없다. 스캔한 풍경은 배경으로 꺼내 쓴다. 자다가 깨도 들어와 클릭, 외출 했다가 돌아와서도 클릭했더니 1년이 지나지 않아 300여 편이 활자화됐다. 이 글을 원단 삼아 디자인을 해 글을 완성한다. 삶의 재미다. 주어진 시대상황에 저항하기보다 즐기기의 일환이다. 태어났으므로 사는 것은 의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숙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하늘나라로 가고 나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그녀는 종종 웃음을 참아가며 살다 간 수필가’라는 내용이 글 어딘가에 섞여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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