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최근 본지 지면을 뜨겁게 달궜던 경기도 안산의 모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행세를 해 온 사람은 법에서 정한 주민대표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 아파트는 8년 전엔 입대의가 두 개였고, 관리사무소도 두 개였다. 대한민국 아파트 실정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주민대표의 양립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극심한 싸움이 벌어졌을지 추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두 기구가 운영되면서 관리비 역시 따로 징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입주민은 이쪽에 돈을 내고, 다른 이는 저쪽에 냈다.
각자의 정통성과 합법성을 주장하던 양 파벌은 서로 고소·고발전을 벌인 끝에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정상화의 길을 걷는 듯 했다. 하지만 따로 징수한 관리비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지루한 법적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그 즈음에 동대표 자격을 상실한 가짜 회장은 자신을 회장으로 적시한 입대의 구성신고서를 관할 지자체에 접수하려다 거부당했다. 2010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회장업무를 수행했다. 반대하는 입주민들이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온갖 궤변을 들이대는 그와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에겐 법도 공권력도 다른 세상의 것이었다. 그렇게 8년을 군림했고 아파트는 그의 왕국이 됐다.
입대의 운영비가 꼬박꼬박 그의 통장으로 입금됐으나, 정작 회의 참석수당이나 활동비를 받은 동대표는 없었다. 하자보수보증금 또한 그가 원하는 대로 쓰였다.
법규정을 잘 아는 관리사무소장들이 말려보기도 하고, 위법성을 경고하기도 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 모두 두 손 들고 단지를 떠났다. 그 수만도 수십명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모 아파트에선 한 입주민의 부당간섭과 업무방해가 문제가 됐다. 입주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되는 화재수신기 수리를 엉뚱한 데 맡기고, 승강기 부품을 마음대로 분해했다. 밤 10시에 술에 취해 관리사무소 문을 망가뜨리고 헬스장도 독단적으로 폐쇄하도록 했다. 견디다 못한 기사들이 퇴사하고, 다른 입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소장 탓으로 돌렸다. 규정과 절차를 설명하는 소장에 대해선 위탁관리회사에 교체를 요구했다.
이 모든 건 다 자신이 입대의 회장이므로 해도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요즘 한창 갑질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모바일 메신저와 전화를 이용해 수시로 업무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는 전에 동대표를 해봐서 단지를 잘 알고 있다는 핑계로 법과 절차보다 자신의 말을 더 따르도록 명령했다. 조금 아는 건 아예 모르는 것만 못하다.
전북 전주에선 입대의 회장이 소장의 궐위상태에서 관리비 집행 등 소장업무를 자의적으로 집행하다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엄격히 분리된 의결과 집행, 즉 의회와 행정부의 업무를 혼자 다 하다가 처벌받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례들은 무수히 나온다.
요즘 공동주택 관리현장에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한 게 동대표의 임기제한 완화 문제다. 이는 각 아파트 관리규약으로 정해 오다가 2010년 법조항으로 명문화됐다. 2년의 임기를 한번만 더 가능하게, 총 4년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장기 재임의 부작용이 심각한 폐해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제한을 동대표 출마자가 없다는 이유로 완화하려 하자 입주민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시 과거로 퇴행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지가 이번 호부터 기획시리즈를 준비했다.(관련기사 1면) 제한의 당위성도, 완화의 필요성도 깊이 고민할 사안이다. 또, 다른 대안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하지만 논의의 관점은 단 하나. 전체 입주민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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