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행 

열린세상 오정순l승인2018.06.05 13:13:34l10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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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정 순  수필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소나기와 천둥 번개를 만나지 않고 산 사람이 있을까. 그럴 때마다 놀라고 아파하지만 성장통이란 이름으로 극복하고 나면 경험은 힘으로 남는다.   
인생은 시기마다 과제가 주어진다. 태어나서 환영받고 보호를 받는 시기일지라도 상처 입는 아이가 있고, 관찰하고 흉내내면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 배우는 시기에도 배울 모델이 마땅치 않아서 그 시기를 엉성하게 보낼 수도 있다. 늘 다음 시기에 보충할 거리를 품고 살게 된다. 배우고 익히며 능력을 성장 확대하는 시기에도 가정에 굴곡진 일이 생기면 고난의 터널을 지나야 하고, 길러진 능력으로 최대한 생산하는 시기를 거칠 때도 운 나쁘게 취업으로 고생하는 시기를 만나면 인생 난제가 되기도 한다. 2세를 키우고 교육시키고 성가시키고 분리하는 시기는 전반부에 길들여진 모든 것들로부터 열매로 다가오는 때이므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책임을 물을 수조차 없다. 자신을 뒤돌아보며 내적 리모델링을 하는 시기에 자각증세를 느끼지 못한다면 다음 시기가 고달파진다. 정리하는 시기를 거쳐 비운 다음 남기고 갈 것만 가지고 사는 간결한 생활의 시기에 집착이 심하거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파버리면 진전이 없게 된다. 능력의 한계 앞에서 수긍하고 타인의 손에 자신을 내어맡기며 견디는 시기를 거칠 때 비참하거나 평화롭거나 할 것이다. 한 생의 여정이 거칠더라도 마지막이 고울 수만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각 시기가 도래하기 전에 선대를 관찰하거나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쌓은 사람은 현실에 정확하게 적용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참고가 되는 지혜를 얻게 된다. 바로 눈 앞에 닥쳐서 결정하느라고 끙끙거리다 보면 한 세월도 안정적으로 맞이하기가 어렵다. 그날이 그날 같은 여행이라면 지루하고 흥미롭지 않지만 시기마다 주어진 과제가 달라서 잘 치러나간다는 즐거움이 깃든다면 다음 시기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이 서고 그 계획이 다소 어그러져도 “그래도 괜찮아, 좋아”하면서 다음 시기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붙는다. 그런가 하면 쉽게 맞이한 시기의 안정감이 오히려 다음 시기에 무력감으로 작용해 고단한 길을 걷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뿌리인 초기가 부실하면 뿌리가 약한 식물처럼 쑥쑥 크지 못해 성장하랴 치유하랴 이중고를 치른다. 그래도 인생 여행은 도중에 그칠 수가 없다. 종착역에 가는 날까지 흥미진진한 심정으로 몇 번의 환승을 하면서 낙오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 감사가 기다릴 것이다. 
지금 나는 확대해 나가던 인연에 대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생각이 많다. 장애복지관에 어떻게 마음이 가 닿았을까를 돌이켜보니 답이 나온다. 
6살에 피어난 인간에 대한 연민, 9살에 만난 성서 안의 자캐오와 지붕을 뚫고 아픈 이웃을 들것으로 내려 예수를 만나게 하는 장면은 나를 감동시켰다. 그때 내 안에 떨어진 작은 씨앗 하나가 있었으니,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사업가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적십자 병원의 교통사고 환자를 돌보고, 걸스카우트에서 배운 것을 친구들에게 적용하고, 양로원 방문, 장애자 재활학교 환경 만들기, 병원 봉사, 지속적인 고아원 방문, 직업 청소년들에게 야학지도, 전신마비 장애 이웃을 돌보면서 50대 후반을 맞았다. 그러다가 복지관이란 기관으로 흘러들어가 오늘에 이르렀으니, 남들이 보기에 훌륭한 일은 아닐지라도 어릴 때 가진 내 꿈길에 들어서 산 셈이다. 
그 꿈은 동생들에게 내 자리를 자꾸 내줘야 하는 아픔으로 빈약해진 마음 자리에서 피어났고 그 빈약함은 타인이란 다른 ‘자신’을 키우고 사랑함으로써 나를 치유하고 완성해가는 차원이었다. 놀랍다. ‘나  밖의 나’를 키우는 작업을 하면서  내가 원만해진다는 사실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이기정신은 자기를 서서히 옥죄고  이타정신은 자신을 펼치는 일이 되므로 삶의 일부를 세상에 내어놓는 것은 일부 구겨진 나 자신을 펴는 일이었다. 타인을 통해 나를 사랑한 셈이다. 이들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우리 집 서재의 책들과도 헤어져야 하는데 참 어렵다.
남편과 내가 문자로 활동한 사람들이라 온통 살아온 역사의 부산물로 한 방이 가득하다. 이제 실효성이 없는 자료집, 손때 묻은 서류함 등이 볼 때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씨를 뿌리는 시기는 지났고 성장 확대하는 시기도 지났다. 때를 알고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일은 현명하다. 
내 마음먹기에 따라 가는 곳마다 명당이 되고 만나는 사람마다 은인이며 매시간 축제가 되려면 인생의 시기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것, 치우고 버리면서 여백을 만들고, 무심해 간결한 내적 풍경을 만드는 일이 나의 당면과제다. 내 뒤에 따라오는 인생 여행객이 봤을 때 어지럽지 않기만 해도 복되리라.

오정순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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