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한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30세가 되어서야 학문의 기초가 확립됐다며 이 말을 붙였다. 인간이 태어나서 30년은 살아야 인생의 기초를 세우고,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나이, ‘이립’이 된다는 것이다.
뭔가를 바로 세우는 건 그만큼 어렵고 치열한 일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사람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38년 만에 바로 서는 진실이 있다. 군인이 저지른 민간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 잔혹영화 속 전쟁터에서나 나올 법한 끔찍한 장면이 실제로 이 나라에서 벌어졌다.
광주항쟁 당시 정치군인들의 과도한 폭력진압과 기총소사 같은 일들은 여러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은 이제야 비로소 어둠의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오월가’ 등 민중가요 속에 등장하는 노랫말이 과장이 아닌 사실이었다니….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비인간적 행위들로 인해 우리 대통령이 사과의 뜻을 전한 게 엊그제인데, 베트남전 참전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자국민을 상대로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게 국민들의 마음을 참담하게 짓이긴다.
참고 참았던 증언자들이 입을 여는 건 미투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먼저 스스로 일어선 용기 있는 여성들이 없었다면 이 진실도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이 바로서기를 시작했다.
수백의 생명들과 함께 바다 속 깊이 침몰했던 세월호가 4년이 지나서야 바로 서고 있다. 많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됐고 앞으로도 더 들겠지만,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일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투사를 추념하고, 전장에서 숨진 군인 한 사람의 유해를 끝까지 찾아 발굴하며,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 소방관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그 위대한 소명의식 때문이다. 비록 영혼을 잃은 맨 몸뚱이라도, 그마저도 아니면 뼈 한 조각이라도 국가가 끝까지 찾아내 감사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비로소 안심한다.
나라가 자랑스러워야 국민이 국가를 사랑한다. 국민을 억압하고 종처럼 여기는 국가는 조폭조직이나 다름없다. 타락한 국가엔 매판세력만 득실거릴 뿐 애국자가 없다.
왜곡되고 억압된 진실을 바로 세우는 건 매우 험난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국가는 그 일을 해내야만 한다.
어른의 말을 잘 들은 착한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이유조차 밝혀주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세월호가 바다에서 올라와 바로 설 수 있었던 건 촛불의 힘이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국민의 뜨거운 열망이 세월호를 건져 올리고 바로 세우는 굵은 동아줄이 됐다.
지난 8일 본지 창간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초창기부터 2011년경까지 대표이사를 지낸 류기용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그는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창립에도 큰 역할을 수행했다. 대주관 수석부회장과 서울시회장을 지낸 대 원로지만, 정신만큼은 늘 한결같았다. 관리현장을 떠나 있으면서도 척박한 관리실태를 안타까워했고, 정부의 무지와 무관심, 일부 주민대표의 몰지각한 행동에 추상같은 비판의 날을 벼리고 또 벼렸다.
그 열정만큼 후배사랑도 지극했다. 원로대접보다는 격의 없이 어울리며 동료로서 함께 술잔 기울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다.
그는 어떤 상대, 어느 자리에서나 관리가 바로 서야 아파트가 바로 설 수 있음을 강력하게 설파했다.
긴 병마와의 사투 전, 마지막 행로 역시 대주관 총회장이었으니 주택관리사로서 그만큼 극적인 삶을 산 이도 없을 것이다.
이립. 젊은 시절 세운 뜻을 그는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관철했다. 그것만으로도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이었다.
패기충만, 낭만논객. 영원한 청춘 류기용. 하늘에서 무거운 짐 벗어버리고 편히 한 잔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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