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선 꽃 내음이 나네요 /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이 1978년에 발표한 ‘장미’의 노랫말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장미’는 첫선을 보인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를 넘어 아주 오랫동안 봄을 대표하는 노래로 한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봄꽃은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꽤나 많지만, 5월에 가장 아름답게 만개하는 장미꽃은 곧 다가올 여름을 예고라도 하듯, 꽃말도 ‘열렬한 사랑(붉은 장미)’이다.
어느 계절이고 아름답지 않은 때가 없겠지만, 봄은 어린 아이와 청소년과 청춘을 상징하면서 여리고, 보드랍고, 싱그러우며, 화려한 그리고 만지면 사라져버릴까 조마조마하고 아쉽기도 한 가장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그렇게 봄을 상징하는 4월과 5월이 대한민국에선 가장 슬픈 때기도 하다. 1960년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뒤엔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독재의 총칼에 맨주먹으로 맞선 이 두 항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두어 해 전 겨울, 온 가족이 유모차를 끌고 광장에 나와, 무혈혁명을 쟁취한 촛불의 평화롭고 거대한 힘은 수십 년 전 4월과 5월에 흘린 피와, 이를 계승한 6월 항쟁의 정신이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4월에는 또 아직도 ‘사건’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불리며, 제주도 사람들에게 가슴의 멍처럼 남아 있는 ‘고립된 학살’, ‘4·3’이 있다.
가장 최근 봄의 비극은 세월호. 누군가에겐 우연히 일어난 해상교통사고였을지 모르겠지만, 이 참사는 정권의 몰락을 부채질했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2018년의 봄. 공동주택 관리현장에 심상치 않은 태동이 감지된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거나 목격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부천 여 소장 폭행사건을 필두로 더 이상 참거나 방관해선 안 된다는 각성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올 봄 들어 거의 매주 본지 지면을 장식해 온 현장 관리자에 대한 폭행과 협박, 부당지시에 이어 이번 호엔 드디어 야구방망이까지 등장했다.(관련기사 3면)
이제 와보니 ‘종놈’이라 모욕하는 건 그저 ‘앙탈’에 불과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관리직원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수난은 위험수위를 한참 넘었다. 많은 범죄적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커다란 빙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이다.
여러 현장 관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경계해야 할 모습도 있다. 괜히 나서봐야 분란만 일으킬 뿐 아무 소득도 없을 것이란 ‘허무주의’, 좋은 위탁사와 편한 단지 만나서 나만 잘 지내면 그만이라는 ‘보신주의’, 회장도 아닌 사람이 전체 입주민의 이익을 침해하는데도 한줌 권력이 무서워, 소신을 지키려는 소장을 음해하는 ‘내부총질’도 있다.
재벌 항공사 오너일가의 범죄적 행위가 용기 있는 직원들에 의해 베일을 벗고 있다. 직원들이 허무주의와 보신주의에 빠져, 내부총질에만 혈안이 돼 있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못했을 저항이 시작됐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그렇게 작은 물방울들이 뭉치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대한 해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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