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빈 소장실
▲ 정체불명의 카메라

경기도 안산시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강 모씨는 며칠 전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소장실 집기가 모두 사라지고 옷걸이 하나만 덩그러니 남은 것. 책상과 컴퓨터를 비롯해 각종 서류철 등 중요 행정비품들뿐만 아니라 개인용품까지 모두 없어지고 먼지만 뒹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동대표 선거를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구성문제로 강 소장과 주민대표를 사칭해온 입주민 A씨와의 충돌로부터 비롯됐다.
강 소장이 선관위원 모집공고를 내고 9명의 지원자를 받아 최종선임 절차만 남겨두고 있었으나, A씨는 이를 무시하고 5명의 선관위원을 선출했다고 공고문을 붙였다. 이 중엔 지원서조차 내지 않은 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강 소장이 이에 대해 절차와 자격문제를 제기하자 퇴근 후 저녁시간을 이용해 기전기사와 경비원에게 소장실 집기들을 모두 다른 장소로 옮기도록 지시한 것. 이들이 불 꺼진 관리사무소에 들어와 짐을 내가는 장면은 고스란히 CCTV에 찍혀 있었다. A씨는 이도 모자라 강 소장을 해임했다며 출근을 막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
A씨는 강 소장이 처음 부임한 지난해 10월 이후 지속적으로 부당한 자금 지출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로부터 받은 하자보수보증금으로 옥상방수공사와 경관조명공사를 시행하면서 공사금액이 부족하자 입주자 몫으로 분류된 보증금을 업체에게 주라고 하는가 하면, 이익잉여금도 뚜렷한 근거 없이 본인이 지시하는 공사대금으로 쓰도록 지시했다. 강 소장이 정해진 용도와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비용을 지출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
문제가 된 선관위원 선임 공고문에 도장 날인을 거부하자 도어락 뭉치를 집어던지며 위협하고, 위탁관리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기전기사와 경비원 등 직원들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소장 지시를 보이콧하도록 하자, 편이 갈린 직원들이 서로 반목하며 분열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0일 두 명의 기사가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했다.
관리사무소 입구엔 직원 동태 감시용으로 보이는 CCTV가 아무도 모르게 설치돼 있었다. 모니터도 저장장치도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조차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이렇게 불법·부당지시를 일삼으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온 A씨가 사실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아니었던 것. 이전에 저지른 범죄사실로 인해 회장은 커녕 동대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회장으로 적시한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신고서를 관할 지자체에 접수했으니, 시청으로부터 반려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게 2010년의 일이었다. 법적으로 아무런 자격도 없이, 평범한 입주민에 불과한 그가 자그마치 8년 동안이나 주민대표 행세를 해 온 것이다. 게다가 8년 전엔 입대의와 관리사무소가 두 개로 쪼개져 이중 운영되면서 관리비도 각각 걷었다가 아직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통 부정과 불법 투성이였다.
그간 몇몇 입주민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막무가내로 자신이 회장이라고 우기며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는 A씨의 기세에 눌려 모두 물러서고 말았다. 위법성 문제를 따지는 관리사무소장은 곧바로 잘라버렸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회장 황장전) 자료에 의하면 지난 8년간 이 단지를 거쳐 간 소장이 공식적으로 19명, 하지만 입주민들에 따르면 배치신고도 하기 전에 스스로 관둔 소장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소장이 부임해 왔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로 떠났다고 한다.
입주민들이 보여준 관리비 내역서엔 대표회의 운영비가 매월 240만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고 있었으나, 정작 다른 동대표는 회의 참석수당은 물론 동전 한 푼도 구경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모두 A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은 강 소장은 굴복하지 않았다. 힘들고 고단한 싸움을 벌이느니 다른 자리를 알아보는 게 훨씬 더 편할 수도 있었지만, A씨의 전횡을 뻔히 보고도 물러선다면 모든 피해가 입주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강 소장은 업무방해 등으로 A씨를 고소했다. 다행히 강 소장의 소신을 믿고 더 이상 비리를 묵과할 수 없다는 입주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 ‘대주관 임원 시위’ 왼쪽부터 경기도회 최준섭 사무국장, 황장전 회장, 강 소장, 이선미 경기도회장, 경기도회 한용훈 부회장, 임한수 법제팀장


대주관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황장전 회장과 이선미 경기도회장, 한용훈 경기도회 부회장, 임한수 법제팀장과 명관호 권익팀장 등은 지난 10일 단지를 방문해 현황을 전해 듣고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황장전 회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8년간이나 자행돼 왔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입주민 피해 방지와 주택관리사들이 처한 부조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끝까지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선미 경기도회장도 “입주민이 뭉쳐서 나서지 않으면 한 개인의 불법조차 막을 수 없다”며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장과 함께 힘을 합해야만 단지 관리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 등은 이날 곧바로 A씨의 업무방해를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에 돌입했으며, 변호사인 명관호 팀장은 A씨의 법률 위반 사실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거나 전해 들은 입주민들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관심해 이런 사태까지 벌어지게 됐다”며 “다행히도 대주관이 나서서 큰 힘을 보태주니 이번이야말로 A씨의 독단과 전횡을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본지는 이들의 활동과 입주민들의 싸움을 후속 취재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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