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비닐은 외래어지만 정작 이 말을 쓰는 나라는 별로 없다. 쓰더라도 지칭하는 물건이나 뜻이 다르다. 미국에선 비닐봉투가 ‘플라스틱 백’이고, 일본에선 PVC가 비닐로 통한다고 한다. 지금 그 ‘이상한 우리말’ 비닐이 골칫거리다.
우린 그동안 쓰레기 처리에 관한 한 자랑스러웠다. 종이, 플라스틱, 비닐, 캔 등을 잘 분리해서 배출하는 나라는 한국과 독일 정도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게다가 전 국민이 쓰레기봉투를 사서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외국인이 한국생활을 시작할 때, 재활용과 유료봉투를 보며 대단한 환경의식이라고 놀라워한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국민들은 분리배출만 잘하면 정부와 업체들이 알아서 재활용하는 줄 알았다. 중국으로 ‘수출’해 왔다는 건 이제야 알았다. 우리뿐 아니라 유수의 국가들이 자기 땅에서 나오는 걸 중국으로 배출하고 있었다. 세계인들은 쓰레기를 보내놓고, 그걸 재활용하는 중국을 향해 지구 파괴의 주범이라고 손가락질 해왔다.
중국의 다른 이름은 ‘세계의 공장’, 그들은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물건을 만들어 수십 년간 전 세계에 공급해 왔다. 오염물질 배출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싼 제품을 마음껏 소비하면서 시커먼 공장 굴뚝을 욕하는 건 자기기만이고 이율배반이다.
이제 중국은 그런 오명을 벗으려 한다. 재활용품 수입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당장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재활용품들을 돈 받고 팔아 온 아파트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처리업체들이 음식물 등에 오염된 비닐을 안 받겠다고 하자, 계약업체들 역시 수거거부에 들어갔다. 화들짝 놀란 환경부가 섣부른 대책을 발표하면서, 업체들을 자극해 더 꼬이기만 했다.
가장 난감한 상황에 빠진 건 관리사무소다. 정부는 곧 정상화될 거라 말하지만, 수거업체는 요지부동. 이 와중에 애꿎은 경비원이 입주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폭행까지 당하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와 환경단체들이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정부도 업체들과 조율에 들어갔으니 사태가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거가 다시 이뤄진다고 해도 근본대책이 될 순 없다. 관행화된 처리정책을 비롯해 우리의 의식체계까지 180도 전환해야 한다. 이는 한 국가가 아닌 전 지구적 문제다.
1997년 여름. 바다를 좋아한 보통시민 찰스 무어는 요트를 타고 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쓰레기 섬을 발견했다. 조사결과 이 더미의 크기는 한국의 15배가 넘었고, 더욱 놀라운 건 계속 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나온 플라스틱류 쓰레기들이 바다로 흘러들어, 모이고 모여 섬을 이룬 것이다. 이 엄청난 쓰레기 섬은 태평양뿐 아니라 대서양과 인도양 등을 합해 4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부서진 미세플라스틱은 물고기의 먹이가 됐다가 함께 우리 뱃속으로 들어온다. 인간의 원죄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시스템 업보다.
대한민국은 비닐을 비롯한 플라스틱류 소비율 세계최고 수준 나라다.
체계화된 재활용 구조가 오히려 ‘분리배출만 잘 하면 많이 써도 상관없다’는 어긋난 환경의식을 만든 건 아닐까?
종이컵 30년, 금속캔 100년, 페트병 100년 이상, 비닐봉투 100년 이상, 스티로폼 500년….
인생은 짧고 쓰레기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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