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르르 무더기로 피고 지는 꽃은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핀다.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꽃이 피고 지니 하룻밤 자고 나면 봄은 저만치 지나가 버린다. 

꽃이 피는 속도에 맞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엔 그래서 봄이 길다.   

 

봄의 꽃들은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핀다. 섬진강 하구의 구례·광양·하동은 지리산의 고로쇠 수액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면 꽃 몽우리를 부풀려 봄의 시작점을 알린다. 

지리산 남부자락 섬진강에 황어가 올라오는 삼월이면 구례 산동의 대평·반곡마을 개천과 담장 옆에는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광양 백운산 쫒비봉 아래 홍쌍리 농원의 매화꽃은 하얀 안개처럼 섬진강변을 물들인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의 북쪽 1,080m 지점 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정읍시와 임실군의 경계에 이르러 갈담저수지를 이룬다. 
순창·곡성·구례군을 남동쪽으로 흐르며 하동군과 광양시 경계에서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노란 산수유 꽃이 시들어지는 무렵 우리나라 제일의 청정 하천인 섬진강변에는 하얀 벚꽃이 만발하니 섬진강변 벚꽃 축제가 열린다. 이 곳 벚꽃 길은 곡성에서 하동까지 연결되는 국도 17호선과 19호선을 따라 온통 하얀 벚꽃이 강변을 따라 만발해 있어 봄의 향기를 느끼며 멋진 드라이브를 경험할 수 있다. 꽃 축제로 꽉 막힌 도로는 삼월의 끝을 지나 사월에는 그래도 백리길 벚꽃으로 위안을 삼을 터다. 

 

꽃 피는 속도처럼 흐르는 섬진강

전라남도 구례는 봄이면 벚꽃과 화엄사의 홍매화 그리고 산수유마을의 산수유꽃을 만나볼 수 있는 코스다. 
구례 사성암에 오르면 지리산과 그 자락의 한편에 자리 잡은 넓은 들녘들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보인다. 동양 최대의 목조건물인 각황전을 비롯한 국보와 보물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화엄사는 봄을 맞이하는 전시와 공연을 연다. 5월 15일까지 경내 성보박물관에서 ‘백자 달항아리’ 전을 열고, 4월 7일 오후 2시 각황전 앞마당에서는 ‘봄의 향기 작은 음악회’를 진행한다. 
300년 역사의 품격이 느껴지는 고택 쌍산재, 구례의 아름다운 산수유꽃을 만나볼 수 있는 산수유마을과 산수유문화관 등 5곳의 명소를 연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관련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은 화개면의 쌍계사와 소설 토지의 배경인 악양의 평사리를 만날 수 있다. 
‘꽃이 피다’는 화개(花開)는 화개장터가 있는 곳이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는 화개천 양쪽 언덕에 붉은 복사꽃이 만발했다고 하니 쌍계사는 무릉도원에 세워진 사찰인 것 같다. 지금은 쌍계사 가는 길은 섬진강으로 흐르는 화개천을 따라 ‘십리벚꽃길’로 유명세를 떨치니 어쩌면 복사꽃으로 시작돼 벚꽃으로 이어지는 셈일까. 

 


쌍계사로 가는 벚꽃터널은 아찔한 황홀감을 선사하는 봄날의 풍경이다. 쌍계사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화개천 상류에 불일폭포가 있다. 지리산에서 잘 볼 수 없는 대형 폭포다. 폭포의 높이만 60m가 넘는다. ‘불일(佛日)’이란 이름은 인근에 있었다는 암자에서 따왔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는 산길을 따라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라’는 이원규 시인의 불일폭포는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으로 그대를 편안하게 감싸 안아준다는 것이리라.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의 평사리는 무딤이들인 마을의 드넓은 들판이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됐다. 들판의 소나무 두 그루는 맞은편 지리산 줄기인 형제봉(1,117m)의 산세를 품안으로 들여다 놓으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의 하얀 백사장을 곁에 뒀다. 

 

꽃이 핀다. 산에, 강에, 언덕에 꽃이 핀다. 이 세상을 환하게 열어 제치며 꽃은 핀다. 강바람이 불고 꽃이 진다. 산을 날아온 꽃잎들을 강물이 싣고 간다. 세월처럼, 사랑처럼, 기쁨처럼, 슬픔처럼 강물은 꽃잎들을 싣고 흐른다.  

-김용택- ‘섬진강학교를 열며’ 중에서

 

화르르 무더기로 피고 지는 꽃은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봐야 한다.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꽃이 피고 지니 하룻밤 자고 나면 봄은 오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린다. 
가까이서 보는 봄의 꽃들은 마음을 들뜨게 만드니 천천히 봄을 음미하려면 화사한 꽃들에만 마음 뺏길 일은 아니다. 
자동차를 세우고 꽃이 피는 속도로 걸으면 들판의 하얀 봄맞이꽃과 푸른색의 봄까치꽃이 올망졸망 별처럼 핀다. 섬진강의 봄꽃을 보고 돌아가는 길은 에둘러 성삼재 높은 길로 올라 웅장한 지리산의 산세를 따라 861번 도로로 들어선다.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와 함양군 마천면의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들러 지리산의 흙길을 걷는다면 좀 더 봄 길의 풍성한 여행이 될 것이다. 

◈먹거리
섬진강에는 은어를 비롯해 참게 등 30여 종의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다. 섬진강 주변의 식당에서는 은어회와 은어구이를 맛볼 수 있으며 참게의 시원한 맛을 곁들인 민물 매운탕과 섬진강 하구의 명물 재첩국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있다. 또한 우리 몸에 좋은 쑥부쟁이 돌솥밥도 뜨고 있고,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송이, 표고, 더덕, 취, 고사리 등 갖가지 산나물을 무쳐 내는 산채 요리도 미각을 살려준다.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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