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칼럼 ⑥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에 각각의 사람들이 거래의 주체가 된다면 법률관계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30명의 사람들이 학술활동을 위해서 건물을 임차하는 경우에 임대인은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런 복잡함은 법인제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사람들의 단체가 사단법인으로 인정된다면 하나의 사람과 같이 다뤄지기 때문에 임대인은 사단법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 된다. 
사단법인이 되기 위해서는 단체가 구성돼 국토교통부나 법무부, 서울시와 같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허가를 받는 일이 쉽지 않다. 무분별하게 법인을 설립하고 법인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 심사절차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사단법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활동하는 단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단체들이 법인으로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독립된 거래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면 위에서 말한 책임이나 재산관계에 관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의 모임도 단체로서 실질을 갖추고 있다면 사단법인과 마찬가지로 거래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를 법적으로 ‘권리능력 없는 사단’ 또는 ‘비법인사단’이라고 부른다. 이런 단체들은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아 은행거래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법인사단이 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 먼저 단체의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체로서 활동하기 위해서 정관이나 규약이 제정돼야 한다. 또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위해서 우리의 머리나 팔다리에 해당하는 총회, 이사회, 대표이사와 같은 기관이 구성돼야 한다. 
아파트에서는 항상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를 위한 단체가 구성돼야 하고 이 단체가 비법인사단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관리를 위한 단체는 전기공급계약, 수도공급계약, 공사계약 등을 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파트에서는 어떠한 단체가 비법인사단에 해당할까? 입주민들로 구성된 입주민단체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아파트에서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비법인사단은 입주자대표회의다. 그런데 과연 입대의는 비법인사단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을 갖추고 있을까?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단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정관이나 규약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입대의는 독립된 규약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입주민단체의 관리규약에 입대의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지만 이 규약은 입주민단체의 규약이지 입대의의 규약이 아니다. 입대의는 관리규약을 개정할 권한이 없다. 
둘째, 입대의는 별도의 재산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비법인사단이기 때문에 관리비채권의 채권자며 재산을 보유할 수 있다. (이를 총유라고 한다) 그런데 이 채권이나 재산은 입대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입주민을 위한 것이다. 즉 입대의는 독자적인 재산을 갖고 있지 않다. 
셋째, 500가구 이상의 아파트에서는 입주민이 직접 입대의 회장을 선출한다. 입대의가 자신의 대표자도 선출할 수 없다면 단체로서의 실질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넷째, 입대의가 비법인사단에 해당한다면 동별대표자는 그 단체의 사원이 된다. 그런데 이 사원의 자격은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주민들의 선거에 의해서 동별대표자로 선출된 경우에만 취득할 수 있다. 사원자격의 취득 여부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동별대표자를 비법인사단의 사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섯째, 단체의 기관에는 총회, 이사회, 대표이사가 있다. 그런데 입대의에는 총회, 이사회, 대표이사에 해당하는 기관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밖에도 입대의를 비법인사단인 단체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많다. 
결론적으로 아파트에서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비법인사단은 입대의가 아니라 입주민단체다. 입주민단체는 규약을 갖고 있으며, 단체의 기관에 해당하는 이사회와 입대의 회장을 두고 있다. 동별대표자와 입대의 회장은 입주민들이 선출할 수 있다. 아파트에서 단체로서 실체를 갖춘 것은 입주민단체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민단체와 입주민총회라는 개념을 규정하지 않고 있으며 판례는 입주민단체가 아니라 입대의가 아파트를 관리하는 비법인사단이라고 한다. 오랜 관행으로 인해서 입대의가 비법인사단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뜬금없어 보인다.  
법에 대해서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다. 법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입대의가 비법인사단이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관행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상가, 오피스텔, 주상복합아파트, 지식산업센터와 같은 집합건물에 관해서도 공동주택관리법을 본뜬 법규정들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법규정들이나 공동주택관리법의 규정들이 집합건물법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관리하기 위한 단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아파트라는 마을공동체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관돼 있다. 당연히 이 마을공동체의 주인은 입주민들이며, 입주민단체가 관리를 위한 단체에 해당한다. 김영두 교수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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