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일정규모 이상의 의무관리 아파트에서 최우선 설치해야 하는 기구는 관리사무소다. 비의무라도 마찬가지. 아파트의 공적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관리사무소의 존재는 필수다.
국민의 약 70%가 공동주택에 거주하다보니 관리사무소장의 중요성도 비례해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윤관석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주택관리연구원이 주관한 ‘공동주택 장기수선제도 법제 현황과 주요이슈’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축사를 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노원을’ 주민 중 99%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제 웬만한 대도시에선 단독주택에 사는 게 신기한 삶의 형태가 돼 버렸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달리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독서실에도 다니며, 다양한 취미활동을 한다. 가끔 잔치도 벌어진다.
과거 관리사무소장은 전기 또는 배관설비 기술자가 맡거나 군장교 출신자의 퇴역 후 일자리로 각광받은 적도 있지만, 1990년대부터는 의무관리단지인 경우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만 맡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갖고 있거나 강한 리더십만 있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입주민들은 아직도 관리사무소가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는 곳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관리사무소의 업무는 법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다. 특히 소방분야 같은 몇 개를 빼곤 모든 업무가 공용부분에 한정돼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입주민과 관리사무소의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변기가 막혔다고 달려오거나, 형광등을 갈아달라고 하고, 머리카락이 잔뜩 엉킨 욕조에 물이 안 내려간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 힘을 쓸 장정이 없거나 노인만 거주하는 집이라면 짬을 내 도와줄 수도 있지만, 모든 가구의 일을 다 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수년전 최고급 아파트를 내세우며 등장한 강남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전유부분의 가정사까지 모든 업무를 관리사무소에서 돌봐준다고 홍보한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입주한 주민들은 첫 관리비 고지서를 받아들고 기절초풍할 뻔 했다고 한다. 관리비가 같은 지역의 고급아파트에 비해 몇 곱절 더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웬만한 중소기업 노동자의 한 달 치 월급이 관리비로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직원만 수 백 명에 달했으니….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당연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리사무소의 업무 범위를 공용부분에 국한하고 있고, 그나마 아파트에선 직원 수조차 예전보다 확연히 줄여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형편이다.
며칠 전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입주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관련기사 1면>
CCTV에 찍힌 영상엔 풀스윙으로 뺨을 후려쳐 여소장이 거의 쓰러질 듯 머리를 휘날리는 모습과 가만히 앉아 있는 관리과장에게도 양손과 발을 동원해 폭행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이유는 더 가관이다. 관리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주변의 재개발공사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화풀이한 꼴이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의 모습에선 마치 샌드백을 때리듯, 어떤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 관리직원들을 샌드백처럼 생각했다는 뜻이다.
공무를 수행 중인 공무원에게 폭행을 가하면 훨씬 더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형법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공무원은 아니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엄연히 입주민의 안전과 평온한 생활을 위한 공무에 해당한다.
그러나 관리직원에 대한 폭행은 오히려 일반 사건만도 못하게 다뤄지고 있다. 알아서 적당히 합의보란 식이다. 그러니 입주민이 관리직원을 고통도 느낄 줄 모르는 무생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매년 자살자가 나오고, 웬만한 폭행은 고용안정(?)을 위한 대가로 치부하며 유야무야 넘기는 실정이다.
처벌규정 강화는 범죄자를 양산하기 위함이 아니다. 예방이 진짜 목적이다.
관리도 공무다. 명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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