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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일이다. 회사 내에서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지만, 회사 창립 이래 처음 발생한 사건이라 매우 당혹스러웠다. 당사자와 목격자들을 조용히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피해자에게는 회사 차원의 정중한 사과와 위로,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작은 규모의 회사다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근무시킬 방법이 없었고, 구성원들에게 경각심을 확실히 주고자 가해자를 퇴사 조치했다. 
그 후 회사는 전체 구성원들을 상대로 정기적인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피해자를 위한 신고와 처리절차 등 제도를 보완했다.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 성희롱·성폭력의 퇴치를 위한 회사의 확고한 의지 덕분인지 다시는 그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최근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문화계에서 시작됐던 미투 운동이 정치계, 법조계, 교육계로 번졌고, ‘나도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담은 ‘위드유(#withyou)’ 운동, 오해 살 행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펜스룰(Pence Rule)’ 등 여파는 커져만 간다. 
유력한 대권후보, 연극계 거장,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시인 등의 추악한 과거가 들춰지며 큰 충격과 탄식이 이어졌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혼여성의 92%가 성추행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오랜 기간 쌓여왔던 우리 사회의 만연한 성폭력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고통과 혼란이 이어지겠지만, 미투 운동이 우리사회를 한 차원 더 발전시키고 성숙케 하는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공동주택 관리업계도 미투 운동의 예외일 수 없다. 최근 입주자대표회장이 여성 관리사무소장과 경리직원을 성추행하고, 관리직원에게는 급여 인상을 빌미로 성상납을 요구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남자 동대표가 아파트 단지에 배치됐으나 아직 출근도 하기 전인 여성 관리소장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던 사건, 청소 불량을 질책하는 척 하며 여성 미화원을 강간하려 했던 사건 등도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관리사무소장이 고용승계를 약점 잡아 경리직원을 성추행하다 자격취소를 당하거나 미화원을 상습 성추행해오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 등은 관리사무소도 성폭력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입주자가 동대표에게, 동대표가 주택관리업자나 관리사무소장에게, 주택관리업자가 관리사무소 직원과 미화원·경비원에게 스스럼없이 갑질을 하는 것이 공동주택관리업계의 현실이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의 성범죄임을 지적하고 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나 환경미화원·경비원 등에 대한 저임금과 비인격적 대우는 공동주택 관리에서의 권력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동주택 관리업계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로 재편되지 않는 한 성폭력은 빈발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관리사무소장 및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관리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입주자대표에게 직원이 성폭력을 당하게 되면 단호히 대처해 직원을 보호할 수 있겠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정기적으로 입주자대표들을 교육시키는 지방자치단체도 성희롱 예방교육에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무관심과 무책임이 내가 사는 공간에서조차도 성폭력과 성희롱이 스스럼없이 벌어지는 현실을 만든 것이다. 
공동체문화와 공동체의식은 그것이 사람들 간의 관계일 때 가능하다. 
쥐꼬리 같은 권력을 쥐었다고 상대를 성적 대상화하고 성적 욕망을 채우려 드는 것은 짐승이다. 짐승을 축출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도 성폭력의 공범임을 우린 미투 운동을 통해 배웠다. 
미투와 위드유 운동이 더더욱 활성화돼야 하는 것이 우리 공동주택이다.   

오 민 석 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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