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30년대 지어진 ‘충정아파트’다.
80년이 넘은 이 아파트는 아직도 서울 한복판에 꿋꿋이 버티고 서 있다. 멀쩡한 건물도 30년만 지나면 재건축 열풍에 스러져가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등재되지 못하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언제 헐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다. 
초창기 아파트들은 대부분 한 동짜리 단독건물이었다. 현재와 같은 마을 개념의 아파트로는 1962년 준공된 마포아파트가 최초다. 6층 건물로 지어진 마포아파트는 10개동에 642가구가 입주해 처음으로 아파트 ‘단지’라 불렸다. 이 아파트는 1990년대 후반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 재건축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래서 ‘마포아파트 재건축조합’역시 한국 최초의 재건축조합으로 기록됐다.
1930년대에 지어진 충정아파트는 아직 살아 있는데, 30년 후에 세워진 마포아파트는 사라지고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결국 우리 아파트의 역사는 80여 년, 단지로 따지면 50여 년 남짓으로 볼 수 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 영토를 접수했다.
외국인들이 처음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놀라고 신기하게 느끼는 게 아파트라고 한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빽빽한 아파트 숲은 코리아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화국’이란 명칭을 붙여준 이도 프랑스 학자 ‘발레리 줄레조’라고 한다. 1993년 처음 우리 땅을 밟은 그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놀라 이 특이한 주거문화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저열한 주거형태로 생각하는 프랑스와 달리 초현대식 고급주택으로 각광받으며, 재테크 수단으로까지 격상된 한국의 아파트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프랑스에서 지리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니 한편으론 우리가 더 신기할 따름이다.
인류의 역사를 감안할 때, 아파트는 눈 깜짝할 새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러니 이 안의 공동체 문화나 관리제도 역시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입주민들의 관리에 대한 인식도 이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초창기 아파트 관리가 관리사무소장에 의해 이뤄졌다면 지금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 
입대의는 명실상부한 아파트의 법적 대표단체. 하지만 대표기구라고 해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파트 내 헌장이라 할 관리규약을 지켜야 하고, 규약도 관련 법을 어기면 무효다.
최근 단지 내 어린이집 재계약에 입대의 의결을 받도록 규약을 개정한 입대의가 ‘상위법과 규정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패소했다. (관련기사 2면)
전기검침수당을 직원들에게 지급한 게 잘못이라며 관련자들을 횡령혐의로 고소한 입대의도 “입대의가 전기검침수당의 귀속주체라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역시 패소했다. (관련기사 3면) 
이 입대의는 어린이집 운영자 선정이 잘못됐다며 전임 입대의 회장에게 손해배상 책임도 물었지만 “업무상 배임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역시 배척당했다.
어느 입대의는 경비원을 모조리 내보내고 전자경비시스템으로 바꾼다고 해서 이목을 끌었고, 다른 입대의는 임금이 오르더라도 모든 경비원 안고 가자고 입주민들을 설득해 칭송받았다. 평범한 입주민으로 지내다 엉겁결에 회장에 오른 사람이 이런저런 송사에 휘말려 전과자가 된 경우도 있다.
모두 각자의 사정에 따라 내린 결정일 테고, 모든 게 입주민을 위해 취한 행동이었을 테니 섣불리 잘잘못을 따지긴 어렵다.
입대의는 크게 수천가구, 입주민 수로 따지면 수 만명의 주거생활을 대표하는 막중한 기구다. 우리 공동주택 문화가 초보단계라면, 입대의 역시 혼돈 속에서 한 단계씩 전진하는 과정에 있다.
전 세계에 아파트 공화국은 우리밖에 없으니 따라갈 모델도 없다. 우리가 인류의 새로운 주거문화를 개척해가는 중이다.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으려면 소수의 결정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을 줄이고, 오류와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 길은 ‘참여’에 있다. 모두 함께 참여하고 고민해야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공리를 도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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