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나는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낼 수 있는지 보여줘야겠어.”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어부의 대사다. 노인의 꿈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훌륭한 어부라고 믿었던 소년에게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 훌륭한 어부…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훌륭한’이란 단어가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나는 성장기에 ‘훌륭한’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만난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는 나를 꿈꾸지 못하게 했다. 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투사들 이야기가 앞장섰고 매주 월요일 조회시간 훈화에 애국자가 될 것을 강요받기도 했다. 그분들의 삶을 상상하기에는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게 훌륭하게 되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백성들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목화씨를 가져와서 오늘날의 면섬유를 입도록 도운 문익점은 붓뚜껑에다 목화씨를 숨겨서 가져오느라고 마음 고생을 했다. 나는 공포스러웠다.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면서라도 조국을 사랑해야 한다면 나는 큰 인물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는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팔도를 돌며 지도 그리는 일에 몰두했으니 어린 나로서는 그런 가장을 존경할 수가 없었고 긍정적인 인물로 꿈꿀 수조차 없었다. 
당시 내 마음에 공명을 일으킨 인물은 방정환, 나이팅게일, 페스탈로찌, 슈바이처, 베토벤 같은 분들이었다. 그분들  덕분에  선생님, 간호사, 사회사업가 등의 직업적 세계를 넘어다 보다가 사회에 나와서 첫 직업은 교사였다. 그러나 1년 봉직하고 사표를 낼 때,  교감선생님은 끝까지 만류했다. 훌륭한 교사를 잃는 것은 국가로서도 손해고 자라는 어린이들에게도 손실이 큰데 왜 그만 두려고 하느냐고 따져 물었고, 교육계에 투신해서 한번 살아볼 만하다고 진지하게 나를 달랬다. 한참 어린 선생에게 진심을 보여줬으며 인생을 이야기해줬기에 내게는 그분이 훌륭한 어른으로 기억된다. 나는 교직을 떠났고 어디서 무엇을 하건 ‘훌륭한’이란  단어를 의식하며 살았다. 일상의 본질과 그 외적인 가치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고, 어떻게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생각했다. 생각의 한계는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그럴 때면 반드시 전문서적을 들췄다.   
본격적인 신앙생활로 접어들어서는 신앙의 본질이 영적 구원에 있으며 성당에 가는 횟수에 비례하지도 않고 봉사의 양과도 무관하며, 다만 일을 통해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신심효과는 배제하지 못할 가치라고 이해됐다. 
나는 내면의 자유를 위해 다양한 교육을 받고 책을 읽고 성서공부를 하면서 얻은 만큼 내주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어느새 ‘훌륭한 신앙인’에 매달렸다. 그 ‘훌륭한’이란 단어가 나를 끔찍하게도 따라 다녔다. 출발할 때는 강렬해도 탄력이 붙으면 내가 왜 시작했으며 이 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를 잊고 만다. 아마도 훌륭한 사람에 대한 콤플렉스가 내면에 길을 내고 나이와 무관하게 나를 찾아다니며 종용했던 것 같다.
최근에는 은연 중에 ‘훌륭한 노인’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중이다. 서서히 생각이나 일의 속도가 줄고 피로도가 단위시간당 높아지며 기억력이 약화되기는 해도 아직 살아가는 데 어려울 것까지는 없다. 그래도 아픔이 처들어오기 전에 면역이란 힘을 길러둬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한다. 다가오지도 않은 앞날에 대해 지레 겁을 먹고  놓아버린다면 허무할 것 같아서 야무지게 안팎의 생활을 개선해 내가 정한 매뉴얼대로 살아내는 것이 훌륭한 노인일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수가 지나고 나니 내 생각에도 물이 오르는가 보다. 이제는 가기 싫은 꽃샘추위만 남은 것 같으니 조만간에 봄날은 간다는 노랫가락이 퍼질 것이다. 훌륭하게 봄을 맞이하기 위해 섭생을 충실하게 하고 무리하지 않도록 일상을 조율하기로 한다. 직삼각형의 수형으로 치우쳐 자라면서도 왕소나무로 관록을 자랑삼던 괴산의 노소나무도 결국 볼라벤 태풍에 쓰러졌으니 일상을 균형잡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할 터다.     

 

오 정 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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