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토의 눈 속에서도 꽃이 피는 복수초는 가장 빨리 피는 야생화다. 때론 철없이 깨어난 곤충들은 밤이면 꽃잎 봉우리 속에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듯 황금 술잔 모습으로 봄이 시작됐음을 알린다.

혼자서도 좋고 둘이어도 좋고, 도란도란 가족들과 그 길을 걸으면 짧은 반나절 여행으로도 한 무더기 꽃으로 핀다

 

올해는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다. 수도가 동파한 주택가는 벽을 타고 얼어버린 고드름이 아픈 상처처럼 남아 있고, 저층의 배수관이 얼어붙어 아파트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입춘과 우수가 지나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꿈틀대며 깨어난다는 경칩이 왔다. 햇빛은 땅바닥을 살짝 두드리다 간혹 솔잎이 쌓인 남향에 나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먼 산 높은 곳이나 야산의 그림들은 똑같은 무채색이고 양수리 강들은 아직 얼음이 걷히지도 않았다. 중앙선 폐철로를 따라 걷는 한 무리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자전거 길의 이정표는 곧 봄이 올 것 같이 손짓한다. 잎이 피기도 전에 솜털 같은 꽃대는 얼어붙은 땅바닥을 뚫고 고개를 내밀며 봄을 재촉한다. 기어이 봄은 오고 있다. 

 

▲ 한 개의 꽃대를 올려 홀아비바람꽃이다. 무더기로 피는 청초한 꽃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바람꽃 중에서도 꽃이 작아 무더기로 핀다. 그래야 자기가 돋보인다. 곤충들에 잘 보이려는 전략이다. 바람에 한들한들 세월 좋은 봄을 알리니 홀아비바람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세정사 홀아비바람꽃-

세정사 ‘얼음 속에서 피는 꽃’

운길산역에서 2㎞ 시골길을 따라 오르면 아라크노피아 생태수목원과 주필거미박물관이 있다. 세계 최초의 거미박물관이다. 25만여 점의 거미와 표본들은 수백종의 화석 및 종유석을 포함하고 있다. 
또 도자기, 불상 등 수집품들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거미박물관은 생태수목원과 함께 운영되니 가족들과의 좋은 시간이 된다. 
그곳에서 다시 차량 한 대 오를 수 있는 길을 따라 1.5㎞ 오르면 예봉산 계곡의 물길과 운길산 새재고개를 따라 흐르는 계곡의 합수점에 세정사가 있다. 세정사 오르는 왼쪽 계곡은 청정지역이다. 계곡 초입부터 초봄이면 야생화가 핀다. 물가에도 피고 돌 틈에서도 핀다. 청노루귀·중의무릇·산괭이눈·현호색·꿩의바람꽃·애기복수초·얼레지·앵초가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차례로 피어 계곡을 덮기 시작한다. 
맑은 계곡과 오솔길에서 보는 야생화는 정원에서 보는 꽃과는 다르다. 겨우내 산기슭은 눈이 쌓여 녹아 흐르며 산 전체가 빙하처럼 보인다. 야생화가 그리 꽃 색깔이 선명하고 예쁜 것은 얼음 속에서 자란 탓이다. 
새재로 오르는 찻길의 끝에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작은 야영장이 있다. 북한강과 남한강을 조망하는 수종사를 거쳐 운길산, 새재고개, 세정사로 연결되는 산행도 그만이다. 지척에 양수리가 있어 전철여행이나 드라이브 코스로 반나절만이라도 기분 전환하기 좋다. 
운길산의 장어집이나 양수리 터미널삼거리에서 양수역 방면 강변길 쪽에는 넓은 무료주차장도 있어 맛집들을 탐방하기 쉽다. 
·세정사 계곡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로 399-38)

 

▲ 야생화 중에서도 큰 꽃잎을 달고 있어 멀리서도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수줍기도 한 빛깔과 때론 도도한 자태로 여러 모양을 하고 있다. 땅을 바라보는 다소곳한 모습은 오후가 되면 봄빛에 꽃잎을 뒤로 젖히며 연분홍 치마를 살짝 드러낸 요염한 모습으로 변한다. 이 꽃을 보면 봄날 마음 설레지 않을 사람 없다. 그래서인지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다. -화야산 얼레지-

바람난 여인 만나러 가는 길

화야산은 가평군 외서면과 양평군 서정면에 걸쳐 있는 해발 755m의 산으로 뽀루봉과 화야산·고동산으로 연결된다. 화야산 계곡은 절골 계곡으로 부르기도 한다. 작은 절집인 운곡암이 있기 때문이다. 삼회리 동네길을 따라 강남금식기도원을 지나면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옆으로 난 비포장길을 따라 걸으면 ‘수도권에도 이런 계곡이 있었나?’ 하며 놀랄 정도다. 풍부한 수량과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를 따라 느리게 구불구불 길은 열두 번이나 개울을 건너 이어진다. 때론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물이 많은 계절에는 신발을 벗고 건너기도 하니 재미가 있다. 아름드리 수목이 우거져 있어 깊은 첩첩산중의 풍경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중간지점의 작은 절집 운곡암에는 돌계단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야생화 정원 위로 목련꽃이 쏟아진다. 
샘물로 목을 축이고 걷는 길은 이제부터 꽃길이다. 3월 중순부터 양지꽃·노루귀·현호색 꽃이 피기 시작한다. 돌무더기 사이에는 보라색 꽃을 피우는 미치광이풀 군락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3월 말이면 화야산계곡 개울 양편을 따라 산자락으로 얼레지꽃이 피어 수도권 최대의 얼레지 군락을 이룬다. 얼레지는 산길을 따라 차례로 피고 지며 정상에서는 4월 중순까지 진달래 꽃그늘에서도 볼 수 있다. 
화야산 야생화는 우리나라에서 힘들이지 않고 손쉽게 볼 수 있는 야생화 군락 중에 몇 안 되는 지역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주변 경관에 취해 걷다 보면 계곡 끝머리 화야산 중턱의 화야산장의 흐드러진 살구나무가 보이고 서서히 산행의 시작점에 이른다. 화야산은 양수리, 서종면, 청평으로 이어지는 북한강의 봄 길에 있는 청평호반의 관문이기도 하다. 맛집으로는 사기막골 이장집 손두부도 좋고 청평호반의 매운탕도 유명하다.
·화야산 계곡 (경기 가평군 청평면 삼회리)

 

▲ 너무 작아 다른 식물들과의 경쟁은 불리하다. 그래서 꽃대를 올리자마자 꽃이 핀다. 보송보송한 꽃대는 추위에 잘 견디도록 진화됐다. 꽃이 지면 잎이 나고 잎의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아 노루귀다. 봄바람이 땅속에서 시작됨을 알린다. -구봉도 노루귀-

푸른바다 파도소리에 피는 꽃

대부도 해솔길은 총 거리 74㎞, 7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안산·시화방조제를 지나 방아머리공원에서 바닷길을 따라 구봉솔밭야영장, 구봉낙조전망대로 이어지는 제1코스는 아름다운 산길과 소나무길이 섬과 섬으로 연결되니 바다 끝에 낙조전망대가 있다. 
제1코스 전체 걷기도 좋지만 구봉도 주차장에서 야산으로 난 우측 길로 접어들면 알짜배기 걷기 코스가 된다. 구봉도 해솔길이다. 이제 구봉도 해솔길로 들어서 보자. 구봉도 해솔길은 어린아이도 어렵지 않게 걷는 코스다. 잘 다듬어진 산길을 걸어 작은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지나 낙조전망대에 이른다. 식사 후 저녁 무렵 일몰도 좋다. 
돌아오는 길은 해변을 따라 산을 돌아 횟집단지를 지나면 주차장으로 다시 오는 방법이 손쉽다. 천천히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 두 시간은 산길 곳곳에 피어 있는 야생화들을 감상하는 시간도 포함돼 있다. 제비꽃과 분홍색·흰색의 노루귀들이 무더기로 산길에 피어 있어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경사면에 피어 있어 눈높이도 편하다. 삼월과 사월 초순이면 오솔길을 따라 양옆으로 핀 꽃길을 걸으면 파도소리와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봄바람도 쾌적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대부도의 해물요리와 칼국수 등 먹거리도 많아 겨울에 지쳐있던 심신을 회복하기에 좋다. 
·구봉도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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