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현재 대한민국 최고 권력집단은 자타공인, ‘검찰’이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엔 ‘하나회’와 ‘보안사’로 대표되는 정치군인이나, ‘중정’ 또는 ‘안기부’로 불리던 ‘남산’의 정보기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역사가 있었으나, 문민화 이후엔 검찰이 명실상부 최고 권력기관으로 통한다. 보통사람들에게 검사는 웬만하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가 여성이어도 마찬가지.
그래서 충격이다. 한 여성검사가 가장 엄숙해야 할 공간인 장례식장에서 선배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이를 문제 삼은 피해자는 오히려 다른 곳으로 발령받는 등 2차 피해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새파란 후배가 야간유흥업소에서나 볼 법한 저속한 손길에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데도 함께 있으면서 못 본 척, 외면한 선배들이 여럿이었다는 점이다. 범죄 앞에서 추상 같은 지엄함을 보여야 할 그들이.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크게 존경받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대표적 시인도 여성후배들을 농락했다.
설상가상. 연극계의 거목이었던 유명 연출가도 그 성(?)스러운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 다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작품이 모두 아름답고,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것들이어서 그들의 실제 삶도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세계 안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니, 그들을 사랑한 팬들에겐 이만저만한 배신과 절망이 아니다.
이것도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유명연출가 역시 여성 연극인들을 시시때때로 괴롭혔다 하고, 대학교수로 있던 유명 연기자는 학생들 위에 왕처럼 군림하며 학대에 가까운 짓을 벌였다는 증언과 목격담이 쏟아져 나온다.
작은 불씨는 이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문학과 연극계를 넘어 영화계, 개그계, 힙합계에서도 미투운동이 확산될 조짐이고 대학가, 증권가, 종교계에서도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리 사회 미혼여성의 92%가 성추행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결국 모든 분야, 모든 집단에서 성폭력이 만연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영미 작가의 시 속 ‘En 선생’은 사회 곳곳에, 바로 우리 곁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En 선생’이면서 놀라는 척, 그들을 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접 나쁜 짓을 하지 않았어도, 최소한 그런 것들을 보고 그냥 넘어간 걸로 따지면 우린 이미 모두 공범들이다.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권력을 바탕으로 발생한다. 나보다 약한 여성, 절대로 대들거나 반항하지 못할 여성이라고 생각할 때, 범죄는 과감해진다.
성범죄는 넘치는 남성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마초들이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보다 강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여성을 추행하는 남자는 없다. 그래서 모든 마초는 비겁하고 졸렬하다.
나는 아니라고 넘기지 말고 한번쯤 되돌아봐야 한다. 갑을관계가 뚜렷한 공동주택관리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경리주임, 미화원 등에 대한 일부 주민 또는 주민대표의 추문이 간간이 들려오기도 한다.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상하관계 때문이다.
직장과 사회 전반의 평등의식이 확고히 자리 잡아야 우리 안의 ‘En 선생’들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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