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중순, 본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국 작가라고 밝힌 그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또는 직원들에 대한 입주민의 갑질 행태를 취재 중”이라며 “이와 관련한 케이스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본보 기자들은 우선 당사자 의사를 먼저 확인해야 하므로 “승낙하면 연결해 주겠다”고 말하고 파악에 나섰다.
본지에 제보하겠다며 전화나 이메일을 보내오는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입주민이 주민대표의 잘못이나 공사 및 용역계약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고, 동대표가 입대의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관리직원이 입주민, 회장, 소장의 갑질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소장이 부당대우와 악성민원에 시달린다며 취재를 요청할 때도 있다.
제보들 중엔 단순히 개인감정을 갖고 비방에 가까운 일방적 자기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진짜 비리로 의심되며 구체적 정황과 신빙성을 갖춘 케이스도 있다.
개인감정으로 제보할 땐 반대편의 입장에 대해서도 취재를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엔 의심의 근거가 부족해 이도 저도 아닌 맹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불발탄이다.
하지만 문제의 소지가 명확한데도 막상 취재단계에 들어가면 허탕을 칠 때가 있다. 제보자가 스스로 포기하고 물러서기 때문이다.
기자가 본격적으로 파고들면 상당수의 제보자들이 “이런다고 내게 득이 될 게 뭐가 있겠느냐”거나 “혼자 싸워봤자 나만 피곤하다”거나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며 맥없이 주저앉아 버린다.
약자의 자리에 위치한 사람일수록 그렇게 포기하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또 개중엔 “따지고 보면 나도 잘한 건 없는 것 같다”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모두 피하는 일에 괜히 나섰다가 혼자 독박 쓰고 찍히면 나중에 일하기만 더 힘들어진다”는 심리는 고용된 약자의 살기 위한 본능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들에게 ‘분노’는 사치다. 부당한 지시를 받아도, 업무 외적인 민원에 시달려도, 심지어 욕설이나 폭행을 당해도, 참지 않으면 더 큰 화를 자초할 뿐이다.
그래서 체념과 패배주의가 만연해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역시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다. 인류의 위대한 진보엔 선구자가 있었고, 앞장서 개척한 사람이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뒤따를 수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이 없었다면 아직도 흑인들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타지 못하고, 메리쿠르가 없었다면 여성들은 아직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남성의 손에 의해서만 탄생하는 걸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본지 기자들이 수소문해 의사를 타진한 결과, 몇 명의 관리사무소장이 방송국 취재에 응했다. 지난해 4월 26일자 본지 1면 톱을 장식했던 기사의 주인공이다.
지난달 말 방영된 방송엔 끊임없이 악성민원을 제기해 소장을 괴롭히며, 그래서 끝내는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함께, 막무가내로 취재진의 질문을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입주민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많은 시청자들이 분노했고 함께 자성하는 계기도 됐다.
세상은 느리지만 분명 변하고 있다. 민원에 시달리고 부당대우를 받는 건 당신 탓이 아니다.
언론 앞에 떳떳해도 된다. 
지금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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