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칼럼 ④ >>집건법과 공주법의 발전방향


 

 

우리는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따라서 말의 의미는 서로의 의사를 교환함에 있어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사소통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말의 의미가 다르며, 그 다름이 의사소통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곤 한다. 그래서 법적인 논의를 시작할 때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다시 개념 정의를 한 후에 논의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논의가 한참 진행된 후에 말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말의 의미를 둘러싼 문제는 어느 분야에서나 발생하는 문제며, 공동주택의 분야도 마찬가지다.
먼저 관리주체라는 용어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주체의 사전적 의미는 ‘행동의 주(主)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적 의미의 관점에서 관리주체는 관리를 하는 주된 사람이나 기관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사전적 의미와 별도로 공동주택관리법은 관리주체에 대해서 법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관리주체란 자치관리의 경우 관리사무소장을 말하며, 위탁관리의 경우 위탁관리업체를 말한다.
그렇다면 관리주체의 사전적 의미와 법적 의미는 서로 일치하는가?
자치관리에 있어서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다. 그리고 위탁관리에 있어서 위탁관리회사는 입대의와 위임계약에 해당하는 위탁관리계약을 체결한 수임인(受任人)이다. 이렇게 본다면 근로자나 수임인을 공동주택의 관리에 있어서 주된 사람이나 기관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입대의가 공동주택 관리에 있어서 주된 사람이나 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면 이 점이 분명해 진다. 법률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판례는 소송주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만약 원고가 소송의 수행을 변호사에게 위임했다면 소송주체는 원고일까 아니면 변호사일까? 당연히 변호사가 아닌 원고가 소송주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실제로 소송을 수행하더라도 변호사가 소송에서 주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소송으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되는 원고와 피고가 주된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공동주택의 관리에 있어서도 실제로 관리소장이나 위탁관리업체가 전문성을 갖고 관리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관리주체는 입대의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관리주체라는 사전적 의미와 법적 의미 사이에 불일치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불일치로 인해 “집합건물에 있어서 관리주체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시 되묻게 된다. “법적인 의미로 질문하는 겁니까, 아니면 일상적인 의미로 질문하는 겁니까?” 참 불친절한 되물음이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다. 공동주택관리법의 의미에서 집합건물의 관리주체는 위탁관리업체며,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관리단이 관리주체에 해당한다.
집합건물법의 관리인이라는 용어도 사전적 의미와 법적 의미가 다른 경우다. 집합건물법에 따르면 관리인은 ‘관리단을 대표하고 관리단의 사무를 집행하는 자’를 말한다. 즉 관리단의 대표자를 말한다. 그런데 사전적으로 관리인은 타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를 말한다. 사전적 의미의 관점에서 본다면 관리인은 관리단의 부탁을 받아서 관리하는 자이기 때문에 관리단의 대표자를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통상적으로 관리인이라는 용어보다는 관리단장 또는 관리대표자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관리주체와 관리인의 관계는 무엇인가? 각각의 사전적 의미와 법적인 의미를 나눠서 양자의 관계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마도 생각할수록 관계가 모호해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용어의 개념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공동주택관리법에서는 소유자를 입주자, 임차인을 사용자라고 부른다. 반면에 집합건물법에서는 구분소유자와 점유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입주자와 구분소유자는 동일한 개념 같은데, 입주자 속에는 소유자와 동거하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이 포함된다. 따라서 입주자와 구분소유자는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밖에도 공동주택 분야에서 말의 의미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서로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다르면 의사소통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특히 어떤 용어의 일상적인 의미와 법적인 의미가 다르다면 토론의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시점에서 강제적으로 용어의 의미를 통일화하거나 변경할 수는 없다. 언어의 진화방향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 법적인 용어도 ‘언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그 의미를 바꾼다고 해도 그에 걸맞은 준비가 없다면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퍼져나가기 어렵다. 오히려 그러한 시도는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따라서 불편하더라도 당분간은 공동주택 분야에서 각각의 용어가 갖고 있는 의미를 분명히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친 후에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흘러 각각의 용어의 의미를 분명히 하는 절차가 확립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가 사용됨으로써 의미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인간은 변화하는 상황에 최적화된 상태로 진화해 왔고, 인간을 이루는 언어도 그렇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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