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 논단

 

 

하 성 규  한국주택관리연구원 원장

19세기 영국을 비롯한 산업화 국가의 노동자들은 일터와 주거지가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고 이들은 정치적 발언권이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됐다. 노동자들이 꾸준히 노력한 결과 1820년대 영국은 노동조합을 금지하는 법률을 폐지했고 노동조합 활동이 합법화됐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 산업화된 국가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확산돼 1890년 무렵에는 대부분 서구 국가에서 노동조합이 합법화됐다.
영국을 중심으로 20세기에 와서 노동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에는 주거환경개선이 큰 몫을 차지했다. 특히 산업혁명을 통해 도시로 이주해온 많은 노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슬럼(slum)의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와 정부는 노동자 주거안정정책을 펴게 되는데 그중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사회주택공급과 임대료 통제 및 보조정책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서구 국가들이 저임금 노동자를 비롯한 주거빈곤층을 지원하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생산자 지원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 지원방식이다.
생산자 지원방식이란 주택공급자에게 보조하는 방식이다. 공공기관이나 비영리단체가 직접 공공임대주택(사회주택)을 건설해 시장임대료보다 저렴하게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세계1차 대전 이후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소비자 지원방식이란 소비자에게 임대료를 보조한다. 임대료 지불이 힘겨운 주거 빈곤가구에 현금보조형식으로 지원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주택바우처(boucher)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기도 했다. 이 제도는 민간임대사업자(집주인)가 과도하게 임대료를 인상하거나 임차인이 부당하게 피해를 입는 것을 막는 목적을 지닌다. 네덜란드는 1901년 세계 최초로 소비자 보조 방식을 시행한 국가다. 1930년대 이후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소비자 지원방식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주택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주거빈곤층을 지원하는 방식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돼 왔다. 먼저 소비자 지원방식보다 생산자 지원방식, 즉 사회주택을 직접 건설 공급하는 것이 복지 효과가 훨씬 크다는 주장이다. 생산자 지원방식 주창자들은 사회주택을 정부 혹은 비영리단체가 직접 공급함으로써 주거빈곤층의 주거수준을 향상시키고 임대주택 재고가 부족한 도시지역에 주택공급효과가 크며 아울러 가시적 효과(정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소비자 지원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공공주택을 공급함으로써 재정 부담이 가중되며 수혜자들의 주거 선택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정부가 공급한 주택의 관리를 위해 행정의 비대화를 초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 지원방식은 상대적으로 정부 재정지출을 절감할 수 있으며 입주자 임대료 부담을 경감하고 주거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며 특히 민간 주택재고 증대와 이용의 효율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자 지원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가난한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보조할 경우 민간임대료의 상승을 부추기게 되며 수혜대상 가구의 가구소득과 임대료의 확인 상 어려움, 그리고 임대주택 재고가 부족한 지역에는 시행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거의 모든 국가의 주거정책을 보면 위에서 논의된 두 가지 형태 중 어느 하나에만 치중하기보다 두 가지를 적절히 조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의 추세는 거의 대부분 서구 국가들은 소비자 보조방식으로의 전환이 뚜렷하다. 그렇다고 생산자 보조방식인 사회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이 전혀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추세는 종전의 공공주택이 지닌 문제점을 해소하고 민간의 참여를 확대해 지원의 다양화를 시도하는 것이라 평가된다.
이제 한국도 주거취약계층의 지원방식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접근법을 논의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1인 가구 및 노인 가구가빠르게 증가하고 주택수요패턴이 많이 변하고 있다. 아울러 베이비붐 세대의 주거 소비행태와 지역별 주택시장이 과거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거복지 수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빈번히 소외되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소득 3만달러 시대 그리고 저성장시대 정부의 주거취약계층 지원 방식으로 어떤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복지효과는 상이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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