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의 한가운데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안동 하회마을로 가는 길. 대지에 흰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다. 하회에 다다르자 저 만큼 소박한 집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하회(河廻)란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화천(花川, 화산에서 이름을 딴 낙동강의 별칭)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고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최적의 입지 
      
마을을 둘러싼 산(화산, 남산, 일월산)은 낙동강 줄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마을은 그 넉넉한 자연을 포근히 안은 형세다. 낮은 구렁 형태의 골을 따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단아하고 소박하게 꾸민 집들은 하나같이 개방감이 시원하다. 이런 모습을 두고 이곳 사람들은 마치 자루가 달린 옛날 다리미 같다고 해 ‘다리미형’ 마을이라 말하기도 한다.
안동 시내에서 50리 떨어져 있어 세속의 번잡함에서 조금 비껴나 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방문객들 때문인지 조금 떠들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먼 옛날 여러 차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잃지 않은 것도 외부와 격리돼 있는 이 마을의 지리적인 조건 때문이다.
흔히들 천혜의 아름다운 지형을 일컬어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한다. 하회는 여기에 딱 들어맞는 마을이다. 마을을 자세히 둘러보면 꼭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과 산줄기는 태극무늬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의 또 다른 이름, 즉 물돌이동, 곡강(曲江), 하상(河上), 강촌(江村), 하촌(河村)은 여기서 비롯됐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하회는 600여 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고려시대에는 허씨(許氏)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 뒤로 안씨(安氏)들이, 조선조 초기에 들어와서는 풍산 류씨(豊山 柳氏)들이 자리를 잡고 하나의 촌락을 이뤘다.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杯盤)에’라는 말처럼 이들 세 성씨가 차례로 마을에 입성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때 국난 극복에 큰 공을 세운 서애 류성룡 선생으로 인해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됐다. 하회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 문화가 가장 잘 보존돼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수직 절벽으로 이뤄진 부용대

하회마을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해 부용대(芙蓉臺)로 오른다. 마을 북쪽, 그러니까 화천 기슭의 깎아지른 듯 솟은 암벽이 부용대다.
일단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부용대 아래에 펼쳐진 모래사장과 강줄기, 하회마을의 주산(主山)인 화산(해발 271m)과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풍산들이 참으로 넉넉해 뵌다. 논과 밭이 대부분인 풍산들은 경북 북부 지방에서 가장 큰 곡창지대로 과거 안동 양반들의 경제적인 토대가 된 곳이다.

▲ 하회마을에 있는 만송정 푸른솔 숲

부용대와 마주한 만송정(萬松亭)의 푸른 솔숲도 빼놓을 수 없는 하회마을의 명소다.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된 이 솔숲은 하회 북서쪽 강변을 따라 울창하게 펼쳐져 있는데 그 푸른 기운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만송정은 조선 선조 때 서애(西厓) 류성룡의 형인 겸암(謙菴) 류운용(1539~1601)이 강 건너편 바위절벽(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가라앉히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은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숲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공간일 뿐 아니라 여름에는 수해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세찬 바람을 막아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독특한 개성의 집들
      
마을 탐방에 나선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고층 건물들만 바라보다 키 낮은 초가와 기와집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하회탈장승이 환한 얼굴로 길손을 맞아준다. 미로처럼 뻗은 골목길은 안내판이 없다면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골목길마다 나즈막이 자리잡은 고택들은 그 모습이 하나같이 친근하고 단아하다. 집 한 채 한 채마다 고풍스런 멋이 살아 있고, 수더분한 골목길과 흙담장이 더없이 정겹게 다가온다.

▲ 서애 유성룡 선생의 종가인 충효당

하회마을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는 집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중에서도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단연 눈길을 끈다. 서애(西厓) 류성룡 선생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용의 13대 종가집인 양진당은 1600년대에 지은 것이다. 하회에서 으뜸가는 고옥답게 ㅁ자형 안채와 -자형의 사랑채와 행랑채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목조로 지었는데 원래는 99칸이었으나 현재는 53칸만 남아 있다.
양진당 앞에 자리 잡은 충효당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종가로 선생이 별세 후 자손들이 중건, 확장한 조선조 중기의 건축물이다. 충효당의 후원 사랑채 옆에는 ‘영모각’을 새로 지어 징비록(국보 제132호) 등 서애 선생의 유물을 보관·전시해 놓고 있다.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 전후의 전황들을 기록한 회고록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바깥마당에 심어놓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기념 식수도 눈길을 끈다. 

▲ 화경당(북촌댁)

하회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이 밖에도 여럿 있다. 북촌댁, 하동고택, 남촌댁, 작천고택, 지산고택, 화경당, 주일재, 빈연정사, 옥연정사, 겸암정사 등이 그것들이다.
하회에서 가장 큰 살림집인 북촌댁(화경당, 중요민속자료 84호)은 경상도 도사(현재 도지사)를 지낸 류도성 선생이 철종 13년에 지은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 사당채,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남촌댁(염행당)은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려 아쉽긴 해도 집을 에워싼 왕대나무숲과 솟을대문이 인상적이다.
하동고택(중요민속자료 177호)은 서애파로 용궁현감(벼슬 이름)을 지낸 류교목 선생이 현종 2년에 창건한 4칸의 활궁(弓)자형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한 채로 이어져 있으며 하회 동쪽에 있다고 해서 하동고택이라 부른다.

여행정보
      
*가는 길=자가용: 영동고속도로 만종JC-중앙고속도로(남원주IC)-영주-서안동IC-하회마을,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함창IC-문경(3번국도)-예천(34번국도)-안동-하회마을, 영동고속도로 여주JC-중부내륙고속도로(충주IC)-문경새재IC-예천(34번국도)-안동-하회마을. 버스편: 동서울터미널(강남터미널)-안동터미널 : 06:00부터 23:00까지 수시 운행. 기차편: 서울역→안동역(동대구역 환승, 3회), 청량리역→안동역, 부산역→안동역(동대구역 환승 3회), 대구역→안동역(동대구역 환승 2회)
*숙박=소박함과 예스러움이 살아있는 하회마을의 민박집을 추천한다. 감나무집(054-853-2975), 지산고택(054-853-9288), 락고재(054-857-3410), 번남고택(054-852-8550) 등
*맛집=안동 고유의 전통음식인 헛제삿밥이 유명하다. 제사 음식을 평소에 먹을 수 있게 한 비빔밥의 일종이다. 하회마을과 안동댐 부근에 헛제삿밥을 내놓은 식당이 있다. 까치구멍집(054-855-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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