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표 임기제한 ‘합헌’-주민참여의 틀을 바꿔야 한다

사 설 한국아파트신문사l승인2018.01.09 10:25:24l10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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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가명)는 낯가림이 심했다. 아기 때 이웃 어른이 안아주면 울음부터 터트렸고, 친구를 사귀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유치원 합창시간엔 뛰어난 가창력을 발휘했지만, 독창을 시키면 입이 얼어붙었다. 먼저 손들고 답변하는 일도 없었다. 엄마는 성격을 고쳐주고자 태권도장에 보내고, 발레를 가르쳐 보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런 민희에게 변화의 조짐이 보인 건 초등학교 입학 후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민희가 반장이 됐다. 일주일씩 돌아가며 맡는 학급반장 순번에 민희 차례가 온 것. 그 작은 사건에서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아이가 깨우기도 전에 일어나고, 다른 아이의 준비물까지 챙겼다. 귀가해선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고 중재한 일, 떠드는 아이를 조용히 하도록 타이른 일들을 말하며 “선생님이 참 힘드실 것 같다”고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까지 보였다. 2학기에 한 번 더 반장을 맡고 나서 민희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됐다. 친구들을 몰고 다녔고, 남자아이들도 민희의 말 한마디에 척척 움직였다. 엄마는 “내 아이에게 저런 열정과 리더십이 숨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며 “먼저 손들고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반장 순번제가 커다란 기회가 됐다”고 활짝 웃었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공동주택 동대표를 한 번만 중임할 수 있도록 규정한 구 주택법 시행령 제50조 제8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 <관련기사 1면>
“동대표의 임기 장기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비리 및 업무경직 등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며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공동주택 관리현장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긴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사실 동대표의 장기재임이 비리 발생의 한 요인이란 건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오래전부터 밝혀져 왔다. 지난 2013년 대대적인 아파트 비리 단속을 벌인 경찰은 “입대의에 막강한 권한이 집중돼 금품수수 등 각종 부패고리 생성이 용이하다”며 “장기간 재임을 방지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을 바라보는 현장의 심정은 복잡다단하다. 장기재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엔 대부분 동의하지만, 새로운 대표를 뽑으려 하면 나서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앞서 경찰은 “입주민의 상당수가 입대의의 존재를 모르거나, 동대표 입후보자가 많지 않아 선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수 동대표 등에 의해 아파트 관련 공사나 용역이 부당하게 결정된다”고 언급했다. 아파트의 현실적 문제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짚은 지적이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아무런 대안 없이 무조건 동대표의 장기재임을 막아야 한다는 말은 무책임하고, 한 사람이 오래 해야 한다는 주장도 억지에 불과하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엔 ‘관리단’이라는 구분소유자들의 단체가 존재한다. 소유자라면 무조건 관리단의 일원이 되도록 규정돼 있다. 의사결정을 위해 모이는 자리가 ‘관리단집회’다. 관리단 산하엔 아파트의 동대표격인 관리위원을 선출해 ‘관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공동주택관리법상 의무관리 아파트엔 관리단 격인 ‘입주자총회’가 없다. 오로지 입대의에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다.
어찌 보면 이런 법적 문제로 인해 입주민들의 참여의식이 미진한 것인지도 모른다. 입주자총회 또는 입주민총회를 조직하고 산하에 대표회의를 둬 주민들이 돌아가며 동대표를 맡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동대표에 관심이 있어도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인 성격 탓에 나서지 못하는 입주민도 있다. 이들을 끌어내기 위해선 어느 정도 의무성을 띨 필요도 있다.
인류 역사에 비춰볼 때 아파트 생활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모든 입주민이 자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틀을 바꾸고 정립해 나가야 한다. 비리근절의 해답은 입주민참여에 있다.
학교에서 반장을 맡아보면 전과 후의 관점이 달라진다. 반장에 오르면 리더의 시각을 갖게 되고, 일반 학생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우리 아파트에 숨어 있는 소극적인 ‘민희’들을 적극적인 참여의 광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한국아파트신문사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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