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걸음 이야기 (4) 모닥불 같은 제자리걸음

윤용수의 에세이 윤용수l승인2018.01.03 15:57:09l10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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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감나무에 마지막 남은 홍시가 자비를 베풀면 황소 입에서는 더운 김이 씩씩거리고, 우리들은 모닥불을 피운다.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하면 겨울이야기도 점점 깊어간다.

모닥불을 피우는 사람들, 모닥불을 쪼이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좋아하는 어린 양들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새벽을 여는 사람들, 그들에게 모닥불마저 없었다면 새벽이 얼마나 더 추울까.

하잘 것 없는 것들이 모여 함께 타는 모닥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모닥불을 쬐는 사람들.

손을 비비고 주위로 다가가면 자리를 내어주는 모닥불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원초적인 순애보의 공간이다.

모닥불의 온기만큼만 사랑이 있고 인정이 있어 우리를 위로하기에 딱 알맞은 처방전이다. 태양이 떠오르고 햇살이 퍼지면 스스로 생명력을 마감하는 그만큼의 사랑은, 눈물을 닦고 나면 손수건을 거두는 우리들의 사랑 만큼이다.

박인희가 부른 ‘모닥불’은 마주 앉은 이야기가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끝이 없다고 했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온갖 것을 다 등장시키는 백석의 ‘모닥불’은 조화와 평등의 공동체적 합일정신이라고 했다.

안도현의 ‘모닥불’은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와 희망적인 삶에 대한 기대라고 했다. 희망이 없다면 모닥불을 피우는 사람들과 모닥불을 쪼이는 사람들이 있을까.

새벽의 어시장에서, 새벽의 공사장에서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은 연말특집도 모르고 송년콘서트도 모른다.

어느 정치가가 얼마를 받고 얼마큼 구속이 되는지도 모른다.

댓글이 무엇이며, SNS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저 오늘 펼치는 이 일들이 제자리에서 떨이를 외치고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희망뿐이다.

 

안도현의 ‘모닥불’이다.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 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먹기 전에

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놓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윤용수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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