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구석 같은 사람 나는 구석이 좋다
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
자주 그늘지는 곳
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는 곳
가을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구르다가 찾아드는 곳
구겨진 휴지들이 모여드는 곳
어쩌면 그 자리는
하느님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그곳이 없으면
나뭇잎들의 굴러다님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
휴지들의 구겨진 꿈을 누가 거두어 주나
우리들 사랑도 마음 한 구석에서 싹트는 것이니까    

- 이창건(1951~) 의 구석 


같은 단어 다른 느낌의 구석 
같은 시대를 산  한 시인은 구석이 좋다는데 나는 구석이 싫다. 네모에서 동그라미를 잘라낸 부스러기 같아서 싫다. 지하철 미화원의 걸레가 비켜가는 곳, 청소기가 비켜가는 곳, 치워도 치워도 다 치워지지 않게 미진한 곳, 싫지만 생기는 구석이 나는 싫다.
사전적 풀이로, 구석은 잘 드러나지 않는 치우친 곳을 속되게 이르는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에 방점을 찍고 창작한 듯하나, 나는 ‘속되게 이르는 말’ 때문에 싫다.   ‘구석’이란 시를 읽기 바로 전에 우연히도 아침 식탁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사전 속의 단어 중 싫은 단어가 ‘구석’이라고 말했다.  ‘집 구석’ ‘방 구석’이란 표현만 써도 나는 그 혀가 싫다.  오늘 미사 중 신부님은 ‘구석 같은 사람’이 되자고 했으나 나는 구석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구석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은밀히 항변했다. 구석 같은 사람은 어딘가 발 딛을 자리가 없어서 찾아든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고 흐르다 미처 흐르지 못한 인생을 보듬고 고여 있게 둬야 한다. 이를테면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품 같은 곳이다.  나는 그런 구석을 빛나게 할 수도 없고, 구석을 치울 수도 없고, 구석이 만들어진 턱을 낮출 수도 없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구석이 싫어서 구석을 면한 사람이라 구석에 내 크기의 사랑을 부을 수는 있어도 구석 같은 사람이 되는 게 희망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구석에 한줌의 빛이고 싶고 한 그릇의 밥이고 싶지 구석이고 싶지는 않다. 구석을 보라고 관심을 촉발시키는 바람잡이 정도다.  내가 세상의 구석 자리인 장애복지관으로 간 것은 내 내면에서 구석 자리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탈출해 자유를 얻은 시점이라 구석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지 구석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구석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났으나 나의 희망이 구석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미안스럽게 나는 구석 같은 사람보다 구석을 챙기는 사람 정도가 희망이다. 나에게 구석은 지향점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러  가는 곳이다. 구석, 아무리 원하지 않아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구석은 존재할 것이고 그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익숙하고 편해서 구석에 대한 애착도 자란다. 그러고 보니 20대에 종로2가 갈릴리 다방의 구석진 자리가 내 단골자리였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그랬구나. 그 자리가 나를 품어줬구나. 구석 자리가…싫어서 떠난 자리가 그리운 것은 사랑의 거처였기 때문일까.” 새해에는 손전등을 들고 구석을 밝히듯 구석이 돼 아픔이나 어려운 이를 품고 사는 사람에게 내 삶이 빛이 되기를 한해살이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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