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묘사를 지낸다고 칠원, 장흥, 의령, 합천을 다녀오고 김장을 하고 나니 백두대간을 타고 내리던 단풍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파란 하늘이 내려와 꿈을 펼치던 그 큰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남쪽 아스팔트에 곤두박질로 생을 마감한다.
따스한 양지쪽 쌀재 터널 입구의 노란 은행잎도 집으로 돌아가고, 옥수골 호수에 가득 담긴 하늘도 춥다.
별들도 춥다.
청량산 둘레길에 이파리 없는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자유를 완창하고, 하늘이 무대이고 바람이 지휘하는 억새의 노래도 대미를 장식한다.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다는 소식이 잦으면, 골목마다 새파란 바람이 불고, 그 어귀 어디쯤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과 오뎅이 따뜻한 겨울이야기를 시작한다.
강릉의 삼숙이탕이, 통영의 물메기탕이 끓기 시작하면 시린 겨울을 알리는 하얀 연탄재가 골목에서 그 뜨거웠던 이야기들로 차곡차곡 쌓인다.
어쩌다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일들이 있다면, 서로가 손을 내밀어 따뜻한 온기로 녹여야 할 허용된 시간이다.
용서의 서(恕)는 “내 마음(心)과 같이(如)한다”는 뜻이 아닌가.
눈물의 잔고가 남아 있을 때에 가슴을 열어야 하리.  
나라 일이야 언제나 다사다난이지만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던 한 해다.
세모의 종은 저만치 있는데 벌써 새해의 일출 명소에는 예약이 끝났단다.
재앙의 정유년을 빨리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가 보다.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인데 세월이 만들어내는 곳곳의 이정표를 찾아 비상구인양 바삐도 움직이는 저것은 무엇일까.
붉은 닭의 해가 떠오르며 희망찬 올해의 사자성어도 빛이 바래져 간다.
우순풍조, 비천도해, 사불범정, 광휘일신, 환골탈태, 발본색원, 역천자망, 우공이산, 득이지추, 군주민수….
정약용의 목민심서 부임6조에 나오는 말이다.
다른 벼슬은 몰라도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은 어렵다는 뜻이리라.
비록 덕이 있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능하지 못하고, 비록 뜻이 있더라도 밝지 못하면 능하지 못한 것이다.
수령이 능하지 못하면 백성은 그 해를 입어 괴로워하고 병이 들어 길바닥에 쓰러질 것이며 사람들의 비난과 귀신의 책망은 수령의 자손들에게 까지 재앙으로 미칠 것이다. 이런데도 어찌 수령 벼슬이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안다면 군자요, 신선의 경지다.
강단에서 청춘을 바친 놈도, 군대에서 청춘을 바친 놈도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송년회 모임에 췌장암으로 죽었다는 동창의 슬픈 이야기. 
그 뜨거운 겨울이야기가 오늘도 계속되고, 후미진 맛집에는 보글보글 무엇이 끓고 있는데, 까닭 없는 슬픔, 이름 모를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연말.
세계가 이해관계로 부글거려도 대한민국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역사를 만든다.
수많은 댓글이 아우성을 지르고, 덧칠을 해대는 이성과 감성이 난장판을 벌여도, 봄 눈 녹으면 모두가 그 자리인 제자리걸음이다.
청풍명월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에서 꽃을 피우고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발길이 서성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이은상 작사, 현재명 작곡의 ‘그 집 앞’이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 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저녁을
외로이 이 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갑니다.

세월 흐르면 제자리걸음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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