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극과 극의 여름과 겨울. 계절에 대한 취향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공동주택 관리 업무에 있어선 그런 엇갈림이 없다. 동파와 화재사고 위험이 급증하는 겨울이야말로 관리의 최대 난적이다.
눈이 내리면 신속히 치워야 낙상사고를 예방할 수 있고, 얼음이 꽁꽁 어는 날엔 각종 배관들이 얼어 터지지나 않을까 수시로 점검하며 노심초사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하루 종일 해빙기를 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지구의 건강과 별개로 눈이 적고 따뜻한 겨울은 공동주택 관리자에게 행운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번 겨울은 한파가 너무 세다. 12월 들어서자마자 맹추위가 몰려오더니 웬만해선 영상으로 올라가는 날 없이 영하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상한파를 증명이라도 하듯 일찌감치 한강이 얼어붙었다. 올겨울 한강 결빙은 지난해보다 42일이나 빠르다. 12월에 한강이 공식 결빙된 건 1946년 이후 무려 71년만이라고 하니 이번 겨울이 얼마나 혹독한지 알 것 같다.
겨울은 전통적으로 서민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연탄 한 장 살 돈도 없는 쪽방촌 사람들은 혹한을 털옷과 솜이불에만 의지한 채 버텨내야 한다. 영양상태마저 부실하면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그나마 여름이 낫다곤 하지만 근래의 여름은 사회적 약자의 생명을 위협하긴 매한가지다. 바람조차 통하지 않는 좁은 방에서 작열하는 태양아래 부채질만 하다가 목숨을 잃는 온열질환 사망자가 매년 늘고 있다.
더욱 당혹스러운 건 이토록 지독한 한파와 폭염이 모두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란 사실이다. 여름이 점점 뜨거운 이유가 지구온난화 때문이란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지금 동장군의 습격 또한 북극의 온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란다. 북극 온도가 올라가면 제트기류가 약해져서 그 안에 갇혀 있던 냉기가 흘러내린다나. 그래서 모스크바보다 추운 서울이 됐다.
지난달 제주도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다가 압착기와 컨베이어 벨트 사이에 목과 가슴이 끼었다. 기계 전문가도 아닌 실습생에게 위험한 업무를 맡긴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난여름 친구에게 보냈던 문자 한 통은 온 국민을 분노와 슬픔에 빠뜨렸다.
“살려줘…너무 더워” “내부온도 43도, 실화냐…” 소년과 청년 사이. 열여덟살 학생은 7월부터 이렇게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다 불과 몇 달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신나는 여름방학은 고사하더라도 기계와 사투하며 폭염을 견뎌야 했다.
고3은 모두 도서관에서 입시준비에만 매달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실습생들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 지도 새삼 알게 됐다.
사람들은 흔히 아파트 관리업무는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을 뿐 추락, 감전, 승강기 등으로 인한 재해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자살까지.
얼마 전 북한군 병사를 살려내 관심을 모은 이국종 교수는 “심각한 사고를 당해 중증외상센터에 실려 오는 사람들 대다수가 블루칼라들”이라고 했다. 다른 교수는 “외상환자 대부분이 젊은이”라고 말한다. 사고는 이렇게 약한 고리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만 골라서 공격한다.
유난히 매섭다 못해 무서운 겨울. 동파방지도 중요하지만 안전사고 예방에도 더욱 긴장할 때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부끄러운 일 투성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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