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 진행자가 물었다.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6남매 중 한 사람이 이야기 문을 튼다.
6남매가 뒹굴거리다 잠이 오면  어디서건 누워 잠드는데, 나중에는 아버지가 잠자리를 정리한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잠을 자야 하는 방으로 안고 갈 때 이미 잠이 깨어 알고 있으면서도 그 상황이 너무나 좋아서 눈을 뜨지 않고 아버지 품에서 잠자리로 갈 때까지 행복감을 누리게 된다. 그때가 일생 중 가장 행복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세상에 어떻게 내 기억을 훔쳐본 듯 내 말을 대신할 수 있을까 놀랐다.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감성으로 내 남편에게 나도 그러한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 첫 번째 행복감을 누린 이후 나는 종종 엄마 방에서 일부러 잠들었다. 그리고 번번이 아버지는 마다하지 않고 나를 안아다 우리들 방으로 데려다 뉘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손을 가까이서 느껴볼 기회가 됐다. 이는 감각기관 중 피부접촉으로 인한 느낌이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어느 커플의 남자에게 결혼을 결정지은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여자네 집에 인사를 간 남자는 그날까지 사랑에 눈 먼 사이가 아니라 일단 다녀와서 생각하자고 갔다가 그 집안의 사위가 되기로 결정한 동기가 바로 스킨십에 있었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 집을 나설 때까지  깊은 감동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대문을 열고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장모님보다 예비사윗감이 한 계단 아래 서 있었다. 검정슈트에 보일 듯 말 듯한 먼지나 머리카락이 있었는데 예비 장모가 등판의 먼지를 털어주며 머리카락을 집어내는데 그 손길이 너무나 따뜻해서 장가들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사람의 정에 허기지고 애정어린 관심을 간절히 바랄 때 사람의 살아있는 기운이 손을 통해 넘어오면 이내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수가 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다가 예수님의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여인아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하듯,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기운을 당긴다. 간절히 주고 싶을 때는 역으로 상대방에게 흘려낸다. 예비 장모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 된다.
어느 남학생은 아버지를 느끼고 싶은데  어느 것으로도 느낄 수가 없어 목말라 하던 중 무엇인가 잘못해 아버지로부터 따귀를 맞게 됐다. 그러나 그 남학생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아버지의 손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술회하기도 한다.
집단 워크숍 중에 발표되는 내용을 들어보면 굉장히 큰 무언가로 만족한 기억보다는 스킨십의 장면을 증언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아버지가 손톱을 깎아준 기억이 행복한 그림으로 남아있다. 아버지의 피부톤이며 손가락의 굵기, 손톱의 생김새까지 생각난다. 장녀라 동생들이 내리내리 태어나는 바람에 엄마의 손은 동생들 몫이었고 나에게 오는 모든 손은 아버지 손이었다.
누군가는 엄마 등에 업혀서 형의 학교 가는 길을 배웅할 때 한참 앞서 가던 형이 되돌아보며 싱끗 웃어줄 때 행복했다. 또 누군가는 엄마가 목욕탕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데 금목걸이가 신기해서 입에 넣고 빨았다가 내놓았다가 한 기억이 무척 행복했다고 전했다. 목욕탕 안이었으니 온몸으로 피부가 밀착한 상황에서의 기분이야 이루 말 할수 없는 행복감이었을 것이다. 
칭찬이나 위로의 말과 달리, 진정이 담긴 스킨십은 사람을 살려낸다. 살아있는 기운을 나누는 행위다. 흉내내는 행위는 참 기운이 전해지지 않아서 거짓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신과 인간도 영적 기운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람과 사람끼리도 마음을 열고 나눌 때는 설명하지 않고도  교감된다. 스킨십의 위력이다.
세계의 정상들이 국제회담을 마치고 헤어지면서 악수를 나눌 때 그들은  우호적인지 아닌지를 이내 알 수 있다고 고백한다. 마음을 담지 않으면 가죽손이고 마음이 담기면 생명 손이 되는 것. 그래서  서로 마음이 담기면 스치기만 해도 전율이 흐르는 것이며 그로 인해 오는 행복감은 평생 가며 기억도 자기 안에서 확대된다.
소소한 행복의 출발은 엄마와 눈을  맞추고 젖을 빨 때다. 그 기억의 재생을 위한 의식이 바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손가락과 입술에서 스킨십의 느낌이 소환되고 담배의 굵기는 유두의 굵기로부터 출발했으며 행복한 기억을 재생하는 데 적합한 버튼과 같다. 뻐끔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왔는지를  알고나 있을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피운 담배 한 대는 바로 가장 초기의 엄마와의 스킨십을 소환하는 동작인 게다. 가장 큰 신뢰의 스킨십은 큰 사랑을 담고  말없이 곁을 스치며 기운을 방출하는 행위다. 춥고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절기에는 잊었던 사람들과 만나 정을 담는 악수와 마음 열고 보듬는 풍경이 자주 목격되길 기원한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