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막바지,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는 이즈음이지만 몸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도 불어넣을 겸 여행 가방을 꾸리고 집 밖을 나서보자. 겨울 여행지는 많고 많은데 하늘과 땅이 만나는 김제도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김제 여행의 포인트는 모악산 일대와 만경평야(김제평야), 노을(해넘이)이 아름다운 망해사, 그리고 귀로에 벽골제에 들르는 일정이 좋다.
김제 땅이 보여주는 겨울 정취는 모악산 부근에 다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로부터 어머니의 산으로 불려왔던 모악산. 이곳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모악산 꼭대기에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토대로 ‘엄뫼’ 또는 ‘모악’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엄뫼’는 높고 큰 산이란 뜻도 갖고 있다. 순 우리말이던 산 이름이 한자로 바뀌면서 ‘모악’이 됐다. 모악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부드러운 산이다.

 

모악산 자락에 들어선 3대 종교

모악산 기슭에는 호남 제일의 고찰 금산사가 우뚝 버티고 있다. 금산사는 신라 혜공왕 2년에 세워졌다는 설과 법흥왕 1년에 창건됐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이 사찰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아들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갇혀 지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금산사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일주문과 금강문, 보제루를 거쳐 절 마당에 들어서면 거대한 규모의 3층 법당이 위용을 드러낸다. 겉보기에는 3층이지만 내부가 하나로 트여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건물 높이만한 세 개의 대형 불상(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이밖에 둘레가 10m에 이르는 석련대, 정밀한 솜씨의 당간지주와 석등,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육각다층석탑, 사각형 이중기단으로 만들어진 방등계단 등 11개의 보물급 문화재도 이 사찰의 깊은 역사를 가늠케 해준다. 

모악산에는 금산사 외에도 귀신사, 대원사, 수왕사 등의 고찰이 있다. 금산사에서 모악산 서쪽 고개를 통해 전주로 넘어가는 길 옆에는 금산사의 말사인 귀신사(歸信寺, 믿음이 돌아온다는 뜻)란 절집이 있다.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에도 나오는 이 절집은 특유의 고요함과 호젓함으로 방문객들을 맞는다.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우람하고 장중하다. 금산사-귀신사를 잇는 길은 낭만 드라이브를 약속한다. 길 양쪽으로 근사한 맛집과 찻집이 있어 시간을 보내기 좋다.

모악산 자락의 금산면 일대는 종교의 성지다.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든 수류천주교회는 1890년대 세워져 1959년 재건됐다.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꾸준하다. 1905년 미국 선교사 데이트가 설립한 금산교회는 당시 ‘ㄱ’자 한옥 건물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남녀가 서로 분리돼 예배를 본 곳으로 유명하다. 교회에서 2㎞ 정도 떨어진 동곡마을에는 1900년대 초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이 사람들을 치료하던 동곡약방이 남아 있다. 마을 앞에 펼쳐진 금평저수지는 나무 데크 산책로가 잘 돼 있어 저수지를 따라 수려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귀신사를 둘러보고 금산사 입구에서 712번 지방도로를 타고 김제 시내로 나온다. 시내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10㎞쯤 남진하면 만경읍에 닿는다. 아득히 펼쳐진 만경평야 한쪽에는 서해바다를 굽어보고 올라앉은 망해사(望海寺)란 절집이 있다. 백제 의자왕 2년 부설거사가 창건한 절로 ‘해 지는 서쪽을 즐긴다’는 뜻의 낙서전(樂西殿)이 고풍스럽다. ‘할배나무’와 ‘할매나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절 앞마당의 팽나무 두 그루와 범종각은 바다를 벗 삼아 사색에 잠겨 있는 듯하다.
망해사는 낙조 명소로도 이름값을 한다. 해질녘 잔잔한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붉은 빛은 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망해사 뒤편엔 진봉산(해발 72m) 전망대가 있다.
망해사에서 소나무 도열한 야트막한 산길(새만금 바람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오르면 바둑판 모양의 만경평야와 심포항 앞바다가 그림처럼 다가선다. 이른바 ‘새만금 바람길’은 만경강 하류인 진봉면 소재지에서 시작해 새만금 사업으로 드러난 간척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심포리 거전 갯벌까지 약 10㎞ 이어져 있다.
망해사에서 진봉산 고갯길을 넘어가면 심포항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합 주산지로 명성을 떨쳤던 곳이지만 지금은 어장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들판과 하늘의 빼어난 조화

심포항의 허전함을 뒤로하고 곧게 뻗은 김제평야 길을 가로지른다. 아득히 펼쳐진 평야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다. 평야 가득 심어놓은 보리는 다가올 봄을 위해 제법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모습이 사뭇 역동적이다.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곡창지대를 갖고 있다. 그 크기가 무려 6,900만평에 달한다. 들판이 오죽 넓었으면 ‘징게 맹게 외얏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이란 말이 나왔을까 싶다. 큰 곡창지대만큼이나 수리시설 또한 거대해 벽골제(碧骨堤, 사적 111호)는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저수지로 꼽힌다. 이 저수지는 선조들이 벼 재배에 들인 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농경유적으로 김제시 부량면의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둑이다. 저수지를 만들고 물길을 열어 오직 땅과 함께 살았던 농군들의 혼은 17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벽골제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기도 하다. 벽골제 앞 광장에 ‘아리랑 문학비’가 서 있고 아리랑문학관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벽골제에서 5분 거리에는 소설 ‘아리랑’에서 모티브를 얻은 아리랑문학마을이 조성돼 있다. 아리랑 12권을 활짝 펼쳐 놓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당시 민중들의 삶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표현했다. 근대 수탈기관이었던 주재소를 비롯해 면사무소, 우체국, 정미소, 하얼빈역 등이 실제 모습처럼 재현돼 있다. 지삼출, 손판석, 차득보 등 ‘아리랑’ 등장인물들이 살았던 가옥(초가)도 눈길을 끈다.

여행정보

*가는 길=모악산은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금산사 나들목으로 빠져나오면 된다. 벽골제, 아리랑마을, 망해사(심포항)는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나들목으로 나와 국도 29호선을 타면 된다.
*숙박=모악산 부근에 있는 모악산유스호스텔(063-548-4401), 킴스캐빈펜션(063-222-0705), 안덕힐링펜션(063-284-3377), 모악펜션(063-227-0088) 등을 권한다. 김제 시내에도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다. 
*맛집=금산면 원평리의 원평지평선청보리한우촌(063-543-0076)은 김제 평야에서 기른 보리를 발효시켜 먹인 총체보리한우는 육질이 부드러워 미식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금구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예촌(063-546-5586)은 새싹비빔밥, 된장비빔밥, 비빔국수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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