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거기에 시간이란 숫자를 입히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세월을 거치면서 정립된 ‘시간’개념은 꽤나 정확해서 ‘과학’이란 말이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매우 ‘과학적’이었다.
사람들은 한 겨울 엄동설한의 어떤 날을 잡아 1년의 첫날로 지정하고 그 1년 365일의 시간 위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10이란 숫자가 채워질 때마다 기념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7년 이전까지 직장은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아버지가 그 질긴 밧줄을 잡고 버티면 어머니는 맘 놓고 아이들을 보살폈다. 혼자 벌어서 자녀를 대학까지 보낼 수도 있었다.
10년이 두 번 지난 지금. 남편은 출근길에 편의점 컵라면을 들이키고, 아내는 자동차에서 화장을 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로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아이가 엄마의 손길에서 벗어나 할머니나 어린이집 선생님의 돌봄을 받는 풍경은 이제 너무 익숙하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성은 마치 능력이 없거나 죄를 짓는 기분이고, 남자들도 아내가 맞벌이에 나서주길 노골적으로 바란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은 여자. 대학 진학률이나 학교 성적도 여성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런 우수인재가 집에서 살림만 하는 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대한민국이 더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여성의 사회진출과 승진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야 한다.
그런데 아빠 혼자 벌어 온 가족이 먹고 살던 1997년 이전보다, 엄마도 함께 버는 2017년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일까.
20년 전 이맘때, 대한민국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쓰면 나라가 ‘폭망’했다. 대마불사, 불패신화를 자랑하던 재벌들도 돈줄이 막히면서 부랴부랴 정리해고에 나섰다. 그해 연말엔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가 넘쳐났고, 크리스마스 캐롤도 뚝 끊겼다.
우리 사회가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어느 엄마가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내던지고 자신도 뛰어내린 후, 어느 아버지는 일가족을 태운 자동차를 몰고 저수지로 돌진했다. 비슷한 종류의 일가족 자살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고, 뉴스의 가치조차 상실했다. 사람들은 무감각해진 자신에게 더 충격받았다.
IMF에 손을 벌리고 가까스로 침몰 위기에서 벗어난 후,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삶은 정체됐다. 자살률은 10년이 훨씬 넘는 동안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고, 국민행복지수는 바닥권이다. 국민이 낸 세금, 공적자금 투입으로 기사회생한 재벌들은 비정규직만 양산해 왔다. 노인과 청소년과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나라에서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가 열리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허망하다. 이젠 틀을 바꿔야 할 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라가 망가진 20년 전쯤부터 주택관리사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다. 직장이 가족의 삶을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서 정년이 없는 이 자격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주택관리사반을 개설한 학원과 온라인 교육기관이 대거 늘어났다. 자기 아파트 소장에게 합격 노하우를 묻는 입주민도 종종 있다.
그러나 공동주택 관리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신분은 여전히 좋지 않다. 오래 근무한 사람일수록 소장의 지위가 오히려 악화됐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박봉과 신분불안에 시달리는 직업임에도 자격증 지원자들이 쇄도하고 있다. 시험의 난이도가 높고 문과와 이과를 포괄하는 과목들이어서 준비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도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도 1,894명의 주택관리사보가 탄생했다.(관련기사 2면)
재수에 삼수를 거듭하며 어렵게 합격했지만 이들 앞엔 취업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 놓여 있다.
주택관리사 제도가 도입되고 공동주택관리의 질이 크게 향상된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의무배치 확대가 건물의 장수명화와 관리만족도를 높여 입주민에게 더 이익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주택관리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느는 만큼 관리종사자들의 권익도 함께 제고되길 염원한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