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事 논 단

 

하 성 규  한국주택관리연구원 원장


비공식 부문(非公式部門)은 공식 경제 부문과 달리 국민총생산(GNP) 통계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과세되지 않고 어떠한 정부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경제 부문이다. 비공식 부문을 때로는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라 부르기도 하며 공식 통계의 범위 밖에서 이뤄지고 있는 불법적인 경제를 의미한다.
지하경제는 범죄 행위, 불법 행위, 보고되지 않은 경제, 기록되지 않은 경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보고되지 않은 경제는 세법에 의해 제도화된 금융 규칙을 일탈·회피하는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기록되지 않은 경제는 정부 기관이 정하는 보고 의무와 규칙을 회피한 형태의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인간 주거 및 주택분야에 있어 비공식부문은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가? 대표적인 것으로 불량무허가 정착지를 들 수 있다. 도시의 불량무허가 정착지는 우리나라에서는 판자촌·달동네·산동네로 불리기도 했다. 불량무허가 주거지는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1960년대와 1970년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시기에 많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이후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도시에 정착했고 1960년대 이후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기에는 농촌의 가난한 농민들이 도시로 대거 이주해 왔다. 이런 시기에 서울 등 대도시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나 저렴주택이 부족했다. 도시 빈민층은 대부분 무허가 불량촌을 형성해 거주했다. 유엔 해비타트(UN HABITAT) 보고에 따르면 불량무허가 정착지는 대부분 공식적 주거정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거나 공공주택정책이 실패한 경우에 거주자 스스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이라 정의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도시에서 과거에 번성했던 달동네 형태의 불량무허가 주거지는 거의 사라졌다. 도시재개발사업 및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불량촌은 현대식 아파트촌으로 변모했다. 그런데 이와 다른 형태의 도시 비공식 부문 주택이 존재하고 있다. 도시지역에 흔히 볼 수 있는 옥탑방, 지하방, 쪽방,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이다. 옥탑방은 건물의 옥상에 불법으로 방 한두 개를 만들어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지하방의 경우 지하 1~2층 주차장이나 전기 혹은 보일러 등의 시설이 설치되는 공간을 방으로 사용하는 경우다. 그리고 쪽방이란 건물외형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기존 공간에 칸막이를 설치해 아주 작은 방을 여러 개 만들어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도시근교에 흔히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는 고등소채 등을 재배하는 시설이지만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리고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컨테이너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용도를 변경 수리해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해당 공장에 일하면서 공장부지 내 이러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공식 부문 주거시설이 공식적 통계에는 정확히 잡히지 않고 있다. 아울러 당국의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단속이 느슨한 틈을 타서 비공식 불량주거시설은 상당히 많이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정부가 주거복지정책 프로그램을 수차례 발표하고 시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공식 부문 주택의 조사통계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비공식 부문 주택 문제에 대한 정책의지는 미진한 상태다.
많은 개도국의 도시들은 비공식 부문 주거시설이나 주택이 전체주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아세아 개도국, 아프리카와 남미의 도시들의 비공식 부문 주택은 가난한 도시민의 삶의 보금자리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도시 비공식 부문 주택 중 새로운 유형의 불량주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제35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보장하고 주택개발정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비공식 부문의 주거에 거주하는 국민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들의 주거권이 얼마나 침해받고 있는지의 실태를 먼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역대 정부의 거의 모든 주거복지정책은 우리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이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시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주거복지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착실하게 추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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