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
제석천과 대범천은 원래 브라만 또는 힌두교의 신상이었으나 대승불교 이후 불법을 지키는 신상이라 여겨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조각상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졌다고 전하며 조선시대 탱화에서 주로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각상으론 청곡사의 것이 유일하다.

◈영산회상도-2000년 도 유형문화재 제349호 지정
영산회상이란 석가모니가 인도에 있는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한 법회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시대를 지나면서 영산회상의 개념은 석가의 설법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 그림은 영산회상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신앙심의 구체적 표현이기도 하다.
영산회상도는 대웅전이나 영산전의 불상 뒤편에 보관되는 것이 보통이며 영산회상은 일반적으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2대 또는 4대 6대 8대 보살과 10대 제자, 불법을 지키는 선신들로 구성된다.

◈삼층석탑-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지정
대웅전 왼편 30m 지점에 별도로 서 있어서 일반적인 탑의 배치양식과 다르다.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인 이중받침에 정사각형의 3층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탑의 받침부분과 탑신부 모두 간략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인데 특히 탑신과 지붕을 각각 하나의 돌로 처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받침대 탑신에는 모서리 기둥과 받침기둥을 조각한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지붕돌에는 처마 끝을 살짝 들어 올려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이에 비해 꼭대기부분은 노반과 사발을 엎어놓은 형태의 복발 장화 구슬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시대에 따라 달라진 탑의 꼭대기 부분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된다. 이 탑은 창건 당시에 세워졌다고 하나 받침부분이 간략하게 처리되고 탑신 및 지붕돌이 축소된 것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건립됐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번에 답사한 곳 외에도 진주지역에는 많은 문화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일정상 다 보지 못한 아쉬움을 시 한 구절로 달래며 답사를 마친다. 

아 아/ 언제였던가// 너의 고독을/ 안아주고 품어준 적이/ 그 언제였던가// 무심히 오늘도/
그 자리만 맴돌고// 살다보면/ 한방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는데,
-박영수, <활짝 핀 부끄러움> 전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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