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올 가을의 수확은 사람의 정서 한 가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별한 것이다. 누군가 타인에게 짜증을 내거든 바로 자신에게 짜증을 내는 것으로 이해하면 맞다. 가슴에 잔뜩  걱정이나 울화가 차 있다가 마땅치 않은 국면과 맞닥트리면 이때다 하고 그 기운이 튀어나오는 경우다. 맞대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 화가 당치 않으니 자연스럽게 만만한 가족들이 그 화를 받기 십상이다. 그 가족도 여의치 않을 때 ‘묻지 마 화풀이 짜증방출’ 사건이 일어난다. 어쨌거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가정이 원만하고 사랑으로 채워져서 어지간한 화가 가라앉을 수 있다면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화가 합당치 않아도 되받지 않고 비켜가는 지혜가 나는 사랑이라고 이해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언제까지여야 아하! 하고 순간순간 물처럼 비켜 흐를 수 있을까.
나는 자식이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만 자식에 대해 책임을 지고 대학만 제대로 넣고 나면 내 인생에 두 다리 쭉 뻗고 살 줄 알았다. 입학할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을 지라도 다행히 안심할 만큼의 성과를 내고 내 손을 털었다.
입학식에 다녀와서부터 앞으로 등록금 준비나 하고 룰루랄라 할 참이었다. 첩첩 고개를 넘을 지라도 안심하기로 했다. 우리도 그 고개를 넘었고 땀 흘리며 어른이 됐으니 그들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이들도 갈 길이 천리 같아서 안심할 때를 쉽게 맞이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우여곡절, 제대를 하고 또 우여곡절, 대학 졸업을 하고 또 우여곡절, 벌지 않고 결혼하느라고 초죽음, 취업을 하고부터는 번뇌다. 그 직장에서 길을 바꿔야 할지 말지 궁리가 천 가지 만 가지다. 
번뇌의 끝은 결정이다. 내 아들은 새 역사를 짓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직장을 나오고부터 전문직 공부를 다시 시작하더니 수염과 트레이닝복과 동무하는 날이 길기만 했다. 합격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과 부모가 아들의 짐이 됐다. 이 또한 우여곡절이다. 마지막 합격 카드가 킹카라고 생각했다. 나의 걱정은 물 건너 가는 줄 알았다. 그 또한 우여곡절 고개를 넘어야 안심인가 보다. 만사가 성과로 평가되는 세상이다 보니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안심 팍하고 다닐 입장이 아니라 당사자나 주변인이 애가 탄다. 언제 그만 두게 될지 불안감이 내면을 지배하면 누구에게도 원만하게 웃음을 주기가 어렵다. 내 손가락이 닳고 입이 닳도록 기도하게 하더니 드디어 그 산을 넘었다는 전갈이다. 내 인생 칠십에  안심해도 좋을 시기가 도래했다. 
요즈음 전문직종의 종사자들은 공부하느라고 수고한 대가를 충분하리 만큼 받기가 요원한 시대가 됐다. 어느 분야에서나 만족도가 떨어진다. 부모는 바라만 보고 있지만 언제 자식 걱정으로부터 놓여날지 모르겠다.
내가 문학상을 타는데도 시상식날 아이들에게 통고하고 싶지 않았다. 속 타는 젊은이들에게 염장질 하는 것 같아서 부부만 가기로 했다. 그러나 아들의 제 문제가 해결되고 나더니 가족을 모두 데리고 시상식장으로 몰려 왔다. 누구나 자신이 편해야 남을 축하하기도 하고 제 속이 불편하면 트집을 잡히기 십상이니 힘든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너그러움은 먼저 자신이 채워져야 나오는 덕목이다. 내게 좋은 일이 있는 날, 주변에서 어둠이 비켜간 것이 선물이다.  나는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작가가 되고 싶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 기운에 글을 얹어 내보내느라고 이날까지 왔다고. 덕분에 부부와 아들 딸 넷과 새로 식구가 된 사위 며느리까지 상다리의 키를 맞췄다. 상생을 구현하고 싶었지 헌신 희생만 하고 나중에 존재감 결핍으로 눈물 흘리는 어른이 되고싶지 않았다. 기울어진 상다리 때문에 가족이란 이름의 상에 올려진 축복이 미끄러져 떨어질 일은 적다. 가족들 덕분에 내가 이 상을 탄다고 말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역할은 기운 상다리가 보이면 그 다리의 고임돌이 될 것이다.
거저 온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티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럴 때 교만이 틈 타고 웃다가 넘어질까 무서워 나는 봉사거리를 하나 더 늘렸다. 조심하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덧나지 않고 엎어지지 않도록 천상의 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건강하게 인생 완주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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