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사실은 칼이 훨씬 더 강하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굳이 칼을 들이대지 않아도 대부분의 언론은 강력한 권력 앞에 알아서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간혹 리영희나 손석희처럼 대쪽같은 저널리스트가 등장하면 민초들이 열광한다. 권력과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그 목숨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것까지 포함된다. 그러니 칼에 맞서는 펜의 힘은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지조를 지키는 것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일 게다.
그와 별개로 펜보다 더 강한 것은 사진이다. 1년여 전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3살 아기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 사진 한 장은 시리아 난민의 슬픈 사연을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호소력 있게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
또한 펜과 사진보다 더욱 강력한 건 동영상이다. 최근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했던 영화 속의 한 장면. 한 배우가 불렀던 노래 ‘세월이 가면’
동네 형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던 매우 김주혁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다시 보게 된 그 동영상은 영화 속 의도와 상관없이 시청자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동영상. 배가 침몰하던 순간에도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아이들이 직접 찍은 동영상은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며 절절한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전해 줬다.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인생 최고의 여행을 떠난 아이들은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다섯 명의 승객은 끝내 미수습자로 남게 됐다. 1311일을 가슴 졸이며 기다린 사람들은 가족을 가슴에 묻은 채 목포신항을 떠났다. 한 유가족이 남긴 말. “세월이 가면 다 잊혀져요. 온 국민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이 세월호를, 세월이 가면 다 잊혀지겠죠.”
그의 말은 제발 잊지 말아달라는 소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온 국민이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말 역시 아이를 기다리는 아빠의 단식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인간 이하의 별종들 때문에 나온 것일 뿐, ‘온 국민’은 ‘온 마음’으로 유가족을 성원했다.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것도 있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도 있다. 그리고 싫어도 맞닥뜨려야 하는 게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나이다.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권력자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천하장사도 흐르는 세월 앞에선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가장 뼈저리게 절감하는 직업 중 하나가 ‘경비원’이다. ‘늙은 직업’으로 분류되면서도 비슷한 듯 약간 다른 ‘미화원’은 경비원에 비해 연령대가 다양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품 없고 초라한 삶을 보낸 사람들이, 늙어서 향하는 길’이 경비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만나본 경비원들 중엔 교장선생님 출신도, 기업체 사장 출신도, 일류대학 출신도 있다. 초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개중엔 인생의 굴곡을 겪으며 전혀 의도치 않았던 방향으로 경비원의 길을 가게 된 사람도 있고, 그저 ‘놀고먹기 싫어서’ 기꺼이 이 일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근래 들어 경비원 중에도 특히 아파트 경비원이 화두다. 자식뻘 되는 입주민들에게 욕을 먹고 매까지 맞아가면서도 어디 한 군데 하소연할 곳도 없었던 그들에게 사회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파트 노동자 중엔 경비원만 있는 게 아니다. 관리사무소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비정규직의 고단한 직장생활을 보내고 있다.
경비원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노동시간과 급여, 그리고 휴게시간을 비롯한 처우문제가 급부상하고 있지만, 다른 직종의 직원들에 대해선 기본적인 통계자료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어쨌든 경비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다.
모든 ‘늙은이’는 모든 ‘젊은이’의 미래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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