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라리 Ⅱ]

        

물결은 출러덩 뱃머리는 울러덩 , 그대 당신은 어데로 갈라고 이배에 올랐나 -정선아리랑-

정선의 아우라지는 오대산에서 발원된 송천과 임계 중봉산에서 발원된 골지천이 어우러져 흐르는 곳으로 ‘아우라지’라는 지명을 얻었다. 송천에서 벌목한 목재를 아우라지에서 뗏목을 만들어 조선시대 남한강 물길을 따라 목재를 한양으로 운반하던 뗏목터다.  아우라지강은 아우라지를 지나며 조양강이라는 명칭을 얻고 귤암리를 지나 정선 가수리에서 지장천과 합쳐 동강이라는 명칭을 얻는다. 동강은 영월 읍내를 지나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돼 흐르다 북한강과 만나 두물머리에서 한강으로 흐른다.

정선아라리 중에 ‘뗏목아리랑’은 조양강, 동강, 남한강을 따라 한강의 마포나루에 도착하기까지의 강물을 따라 목재를 수송하던 떼꾼들의 애환과 나루터 작부들의 농후한 대화 등 객주에 얽힌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만지산 전산옥, 영월 덕포 꽁지갈보, 팔당주막 들병장수 등 객주의 주모들도 등장한다. 그래서 천질에 만질에 떼품을 팔아서 술집 작부에게 다 바쳤다는 가사도 생겼다. 남한강은 물이 많은 장마철이면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에서 나무를 싣고 띄운 뗏목이 강을 따라 서울까지 사흘이면 도착했다.
1960년 이전까지도 정선에서 서울로 뗏목을 운반했던 기록들이 있다. 물이 많은 장마철 떼꾼들이 목숨을 담보로 뗏목을 운반해 제법 큰 목돈을 받았으니 ‘떼돈’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생겼다. “가래껍질 느릅껍질 동아줄 틀어서, 당태목 대고 떼를 매서 마포나루를 갑시다 / 뗏사공이 되면은 가면은 못오나, 물결우에 흰구름 뜨듯이 둥실둥실 떠가네” 정선아리랑의 가사를 쫓아 산과 물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최고의 비경을 따라 동강으로 떠나 본다.

뗏목 넘기는 소리. 아직도 동강이네

동강은 구불구불 깎아지른 산과 절벽을 돌고 돌아 흐르는 사행천이다. 대부분이 석회암 지역으로 험한 태산준령을 깎아내며 강물은 흐른다. 물과 뼝창이 길을 막으니 산길도 예사롭지 않고 마을과 마을은 가까운 듯 갈 길은 그저 멀기만 하다. 뼝창은 높은 바위절벽이라는 강원도의 사투리로 뼝대라 부르기도 한다. 그나마 강 옆으로 도로가 있어 몇몇 마을은 차로 들어갈 수 있지만 마을에서 강 건너 마을로 가는 길은 아직도 작은 나룻배로 건너가기도 한다.

병방치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한반도처럼 보이는 낮은 구릉은 나팔봉으로 이어지고 동강할미꽃으로 이름을 알린 귤암리와 유유히 흐르는 조양강은 가수리에서 여울을 만드니 동강의 시작점이다. 여울이 예쁘게 흐르는 마을이라 가수리이다. 석회암 절벽에 서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강을 굽어보고 있다. 원래는 다섯 그루가 있어서 오송정이라 부른다. 가수분교에는 600년 된 느티나무와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나팔봉·만지산과 이어진 떡갈고댕이산 자락에 기댄 마을의 풍경은 여행자의 발길을 묶어둔다. 운치리 수동의 섶다리는 여울에 정겹다.

고성산성에서 바라보면 연포, 구포, 가정마을을 휘도는 물줄기는 겹겹이 쌓인 벼랑에 제 몸을 숨기기도 하고 가파른 뼝대들은 마을의 속살을 감추듯 서있다. 나리소와 바리소는 물길이 바위를 깎으며 커다란 소를 이루고 퇴적된 모래가 강물에 쌓이니 물이 적을 때는 걸어서 건널 것 같은 풍경이다. 나리소에서 소골과 제장을 힘겹게 돌아온 물길이 소사마을 바새에 이르러 힘겨운 몸을 푼다. 바새 앞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절벽은 마을 사람들이 ‘앞뼝창’이라고 부른다. 구불구불 굽이치는 강과 뼝대들이 만든 비경은 백운산과 칠족령에서 절정을 이룬다.

칠족령은 제장마을과 문희마을을 연결하는 백운산 자락으로 지금은 뼝대와 뼝대 사이에 하늘벽 유리다리를 설치해 동강의 기암절벽을 걷는 트레킹코스로 이름이 나있다. 옛날 제장마을에서 옻을 끓일 때 이진사집 개가 발바닥에 옻을 묻힌 채 고개 마루를 올라가며 발자국을 남겼다고 해서 ‘옻 칠(漆)’ 자와 ‘발 족(足)’자를 써서 ‘칠족령’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다시 물길은 돌아 연포마을에 이른다. 잎담배를 재배하는 십 여 가구의 농가들이 있어 붉은 흙벽의 담배 건조막이 있기에 연포마을로 불린다. 복숭아꽃이 피는 봄이면 노란 민들레와 어우러진 강과 마을풍경은 몽유도원이 따로 없다. 강물은 제장마을에 이르도록 몽돌을 만든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인 분교는 한때 생태학교로 운영됐지만 오지 중 오지인 까닭에 간혹 야영지로만 활용되니 분교 앞 뼝대는 바로 눈앞에서 보면 수십 길이이다. 강물은 백룡동굴을 지나 황새여울을 급하게 흘러 진탄나루에 이르니 지금은 래프팅의 시작점인 문산리다. 영월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수동을 지나 굽이굽이 산을 돌고 돌아야만 갈 수 있는 마을이다.
동강의 가장 수려한 비경을 만날 수 있는 어라연을 걸어서 볼 수 있는 마을이며 동강 트레킹 시에는 이틀째 숙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라연은 ‘고기가 비단결 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어라연은 일명 삼선암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선인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하니 트레킹 시에는 반드시 배로 건너야 하는 물이 깊은 곳이다. 수동리에서 잣봉을 넘어서 소나무와 어우러진 비경을 만날 수도 있다. 뗏목길 가운데는 어라연을 지나 된꼬까리가 제일 넘어가기 힘든 물길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된꼬까리를 지나면 동강에서 가장 평온하고 넓은 강변 만지를 만난다.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무사히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판차려 놓게” 라는 정선아리랑의 동강 뗏꾼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곳을 이른다. 만지 아래로는 섭새나루다. 동강을 굽이돌아온 래프팅 배들이 닿는 종착지이며 동강트레킹의 종착지다.
물길을 따라 동강12경을 걷는 트레킹은 서너 번은 배로 건너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2박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뗏꾼들이 내려 온 길. 오지라 불리는 길이 없는 길. 정선아리랑의 가락이 귓가에 울리는 길. 아직도 동강은 최고의 비경으로 남아 가슴을 적신다.           

 

*참고문헌 : 정선의 뗏목 / 진용선(정선아리랑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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